자유토론 분류

오랫만입니다^^

컨텐츠 정보

  • 928 조회
  • 3 댓글
  • 2 추천
  • 0 비추천
  • 목록

본문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한동안 못왔는데 흥무대왕님이 계속 글을 올리시니 반갑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하고픈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다들 알고 계시지만 지적하고픈 얘기는 한국사는 한민족사이지 한반도사가 아니란 것입니다. 

한민족은 각종 건국설화에서 보듯이 현재의 하북성 산동성 만주 한반도가 활동무대였습니다.  그런데 저 지역들 모두에서 활동한게 아니라 고대지나족들의 활동영역의 변경에 따라 변동해왔습니다. 따라서 역사기록에 나와있는 내용을 가지고 위치비정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런다음 고고학적 유적(유물은 무역에 따라 이동할 수 있기에 유적의 절대연도와 성격 파악이 중요)으로 백업하는게 맞습니다. 



2. 제가 보는 한민족의 활동무대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나서 부터 살펴보면 산동성과 하북성 및 중국동해안 일대입니다. 

아직 추운 관계로 만주와 한반도는  상당부분 비어 있었습니다. 반면 산동성이나 하북성 및 중국동해안은 따뜻해졌고 사람들이 남쪽에서 올라와 살게되었습니다. 이는 한민족유전자 이동경로에서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빙하기가 끝나고 남쪽 버마일대에서 올라와 황하중류지역에서 성장한 고대지나족이 황하하류지역으로 점점 진출함에 따라 고대한민족은 이들과 섞여살거나 동쪽으로 이주하면서 만주와 한반도일대로 사람들이 이동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주와 한반도 일대도 신석기문화가 개시되었다고 봅니다. 

즉 고대지나족 선조들이 황하중류에서 태행산맥을 넘기시작하면서 고대한민족 선조들은 계속 그자리에 있거나 이동하면서 고대한민족 선조들의 활동무대는 중국동해안일대와 요서 요동 북만주 연해주 한반도 일대로 확장되었습니다



3. 그러다 말(기원전 40세기경 중앙아시아에서 가축화되어 사방으로 전파)을 타고 고대초원길로 동쪽으로 이동한 단군족이 요하서쪽 대릉하 동쪽으로 이동하며 홍산문화를 만들고 이어서 이 지역에 정착하며 만든게 단군조선이라고 봅니다.  


한편 초원길로 전해진 청동기(기원전20세기경 만주에 출현)를 바탕으로 세워진 고조선은 태양(하느님)숭배와 홍익인간 사상으로 고대한민족 선조들을 통합해가며 서쪽으로는 하북성 동쪽과 동쪽으로는 평야로 이어진 대동강 및 북쪽으론 북만주까지 영향권에 두는 고대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단군조선은 대읍-읍-소읍이 누층적으로 결합된 고대봉건제 체제의 국가였습니다. 이는 평양이 대읍을 뜻한다는 언어학연구로 입증되었습니다. 



4. 인신공양제사와 약탈 식인 등 마야 아즈텍 문명과 흡사한 체계를 갖춘 상나라(은)는 고대지나족 선조들을 청동기무기로 폭압적으로 통합하여 단군조선과 마찬가지로 상족만의 고대봉건제를 구축하였고 영역을 계속 동쪽으로 확장해갔습니다. 그러다 고대지나족 선조중 주족에 의하여 말살당하고 주족은 여러부족을 모아 주나라를 세웠으며 마찬가지로 고대봉건제를 실시하며 주로 태행산맥 서쪽에서 성장하다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며 분열되었습니다. 



5. 기원전 5세기무렵 보편화된 철기는 무기와 농기구로 만들어져 고대지나족들이 세운 나라들은 이를 바탕으로 태행산맥과 그 동쪽 밀림을 벌목하고 영토를 넓혔고 이로인해 본격적으로 태행산맥동쪽에 살던 고대한민족과 충돌하면서 고대한민족은 서서히 요서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6. 상주교체기에 기자일족이 고죽국(지금의 북경부근)으로 망명하자 단군조선은 이들을 이용해 변경지역 방아를 맡겼습니다.  이후 진한교체기에 대규모의 이민이 요서요동쪽으로 이루어지면서 위만정권이 기자족 정권을 탈취하면서 한나라의 도움을 받아 요서일대를 정복하자 연쇄적으로 요동과 한반도 북만주일대로의 이민이 이루어졌고 단군조선의 누층적 읍제봉건국가체제는 붕괴되고 열국시대가 개시되었습니다. 단군조선 왕실은 명맥만 유지하던 주나라 왕실과 같이 명맥만 유지한체 대동강과 청천강일대로 이동하며 3세기경 소멸되었습니다. 이는 삼국지동이열전에 금조선(현재조선)이란 문구로 입증됩니다. 



7. 기원전 2세기말 위만의 확장과 한나라의 확장으로 인해 요서와 요동에 살던 고대한민족은 요동과 길림성쪽에서는 진국을 세우고 대동강쪽에선 준왕이 한을 세웠고 내몽골북부에서 이동한 부여는 요하북쪽과 북만주일대에서는 부여를 세웠습니다. 그러다 한나라의 위만정벌과 기후악화로 인해 또다시 이민이 발생하자 진국과 부여일부는 남하를 하였고 한의 대동강지역은 낙랑이 차지하고 진국과 부여일부는 마한 진한 변한 삼한체제를 세웠습니다. 



8. 기원전 1세기중반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가 차례대로 건국되며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삼국시대가 개시되면서 고대한민족의 활동무대는 요동과 한반도와 북만주와 연해주 일본열도 일대로 고정되었습니다. 이는 발해멸망시까지 유지되었으며 연해주와 길림성 북만주 서북한의 발해유적이 입증합니다. 

고구려와 신라는 고대국가의 징표인 중앙집권적 국가였지만 백제만은 독특하게 부여식 봉건제국가체제를 유지했습니다. 부여식봉건제체제란 혼인동맹을 통해 전쟁을 최소화하면서 영역을 넓혀가는 시스템입니다. 슥 담로체제입니다.  문제는 왕권투쟁인데 그 혼란함은 일본서기에 잘나와있습니다. 또 백제는 해상왕국으로서 일본열도를 자기영역으로 만들고 한때는 요서와 중국동해안일대를 영역으로둔 국가였습니다. 한성백제는 백제를 구성하는 담로국가였고 웅진백제는 백제의 왕실국가였습니다. 개로왕 전사이후 두국가는 하나로 합쳐졌고 그 활동을 기록한게 구삼국사와 일본서기인데 신라는 의도적으로 웅진백제를 삭제했고 일본서기는 마치 독자적인 일본사인양 왜곡했습니다. 



9. 발해멸망이후 고대한민족 영향권에 놓여있던 거란과 여진이 성장하며 고대한민족의 활동무대는 한반도와 요동일부로 축소되었습니다.  일본열도는 8세기에 독자민족과 국가를 선언하며 한국사에서 떨어져나갔고 이를 기념해서 만든 사서가 일본서기입니다. 




앞으로 위의 주제들을 가지고 시간날때마다 글을 쓸 예정입니다. 다시한번 계속 수플을 지켜오신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이상 제생각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윤내현교수의 한국고대사신론(원판)

김상교수의 삼한체제의 재조명1 2 3

복기대교수의 각종논문

관련자료

댓글 3

IbelieveinYou님의 댓글

언제 오시나 했어여...
바쁘시더라도 생존신고는 해 주셔여.
출석체크도 좋구여....
자게에 살아있다고 한문장이라 남겨주셔요.

흥무대왕님의 댓글

반갑습니다. 오래만이네요. ^^
뭔가 일이 있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하도 안 와서 여길 떠난 줄 알았네요. 앞으로 종종 글 올려주세요. 혼자만 올리려니 재미없네요. ㅎㅎ
전체 319 / 7 페이지
번호
제목
이름
전체 319 / 7 페이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