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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본 전조선-후조선 (3.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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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서 살펴본 고고학 성과들로 제가 두 문헌을 검토하여 세운 가설을 평가하고, 결론을 내겠습니다.

1. 고대 조선은 전조선-후조선-위만조선의 3개의 정치체가 연속됨

2. 전조선 연혁

  a. B.C.24세기 후반, 평양성에서 건국

  b. B.C.21세기 청동기문화의 시작과 함께 백악산 아사달로 천도

  c. B.C.6세기 후조선에게 밀려 장당경으로 천도

  d. B.C.5세기 후조선에 흡수 (아사달로 복귀, 혹은 멸망)

3. 후조선 연혁

  a. B.C.12세기경 전조선의 서쪽에서 세력 성립

  b. B.C.6세기경 철기문화를 통해 세력이 성장하여 동진, 전조선의 중심지 백악산 아사달 접수

  c. B.C.3세기경 연나라에 패퇴 (진개)

  d. B.C.195년 위만에게 밀려나 한반도로 이동

4. 위만조선 연혁

  a. BC 195년 후조선 중심지 접수

  b. BC 108년 한나라에 패망

1. 고대 조선은 전조선-후조선-위만조선의 3개의 정치체가 연속됨

-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요동 산지에서 정가와자유형이 신성자문화를 대체해 나가는 과정이 전조선-후조선의 대체를 의미한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위만조선은 따로 언급이 필요 없을 듯 하네요. 물론 여기서의 연속이란 시간적 연속이고, 물질문화에서는 일정부분 차이가 존재합니다.

- "단군"은 상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발견했네요. 정신적 지주를 의미하거나 "조선"을 의인화 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만일 조선을 의인화 한 것이라면 환웅과 웅녀의 설화가 더 의미를 가지게 되겠네요. 단군의 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단군조선"이라는 용어는 타당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리고 "기자"가 조선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 또한 "기자의 후손이 조선을 다스렸다는 증거"는 없기에 "기자조선"이라는 용어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후조선을 "준왕조선"이라 부른다면, "준왕"의 선왕인 "부왕"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고 후조선 800여년의 역사를 놓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첫글에서 제안한 전조선-후조선의 명칭은 그런 관점에서 나왔습니다.

 - 조선의 모화사상과 일본의 식민사관, 중국의 동북공정이 강조하는 "기자조선"을 폐기하다 보니, 그 반동으로 "후조선"을 놓친건 아닐까요? "기자"를 폐기하는 건 좋은 데, "후조선"까지 폐기하지는 말아야하지 않았을까요?

- 청동기시대에 한반도와 동북지역의 30여개의 청동기문화들이 주변문화(북방계 또는 중원계)와는 구별되는 공통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니, 단순히 "고조선"이라는 용어로 BC 24세기~BC2세기까지의 시대를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전조선을 A세력, 후조선을 B세력, 위만조선을 C세력으로 부르거나, 전조선을 "선주민", 정가와자유형을 "고조선"으로 불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그 시대가, 그 공간이 단순하지 않았고, 어떤 흐름이 존재했다는 걸 인식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 전조선


a. B.C.24세기 후반, 평양성에서 건국

- 현재로서는 시기와 위치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삼국유사, 제왕운기 모두 BC 24세기 후반부를 지목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저는 기후변화인 4.2 ka event 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더 검토해 볼 사항입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 우임금의 치수신화도 4.2 ka event와 관련이 있네요.

- BC 24C~19C의 500여년간은 신석기시대입니다. 고조선의 초기 문화로 추정되는 마성자하층문화(신석기)의 편년이 어떻게 되는지, 조금 더 앞선 시기의 선행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지도 또한 앞으로 공부해야 할 사항입니다.

- 삼국유사의 첫번째 기사인,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에 나오는 '위서'는, 역으로 생각해보면 BC 4세기경에 편찬된 자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b. B.C.21세기 청동기문화의 시작과 함께 백악산 아사달로 천도

- 중심지 이동의 원인이 틀렸습니다. 청동기문화의 시작이 BC 18세기이니, 신석기시대 중에 이동한 것으로 봐야할 듯 합니다. 그렇다면 원인은 따로 있을텐데, 확인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문헌에는 원인이 나오지 않으니, 제 억측에 불과했습니다.


c. B.C.6세기 후조선에게 밀려 장당경으로 천도

- 시기는 맞습니다. 하지만 신성자문화(넓은 의미로 쌍방문화)가 정가와자문화로 대체되는 건 맞는데, 신성자문화에 지배계층이 있어서 그들이 압록강 중하류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d. B.C.5세기 후조선에 흡수 (아사달로 복귀, 혹은 멸망)

- 이 또한 모호합니다. 겨우 100년만에 통합되었다면 물질문화로 확인이 가능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정가와자유형의 BC 4세기 영역을 감안하면 당연히 통합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3. 후조선


a. B.C.12세기경 고조선의 서쪽에서 세력 성립

- 시기는 틀렸습니다. BC 10세기경이네요. 위치 방향은 맞습니다. 신성자문화를 전조선으로 본다면 서쪽에 있는 십이대영자문화가 후조선이라 생각합니다.


b. B.C.6세기경 철기문화를 통해 세력이 성장하여 동진, 고조선의 중심지 백악산 아사달 접수

- 시기와 장소는 맞지만, 원인인 철기문화의 성장은 틀렸습니다. 중국 동북지역의 철기문화는 빨라야 BC 3세기로 봅니다. 아마도 후조선이 요동지역으로 확장한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듯 합니다. 이 또한 문헌에는 원인이 나오지 않고 제 억측에 불과했습니다.

- 십이대영자문화는 왜 비파형동검 문화를 꽃피웠을까요? 제 생각엔 주변 세력과의 투쟁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데, 여기서 주변세력은 모두 북방계입니다. 하북만 보더라도 대타두문화(BC 19C~14C) - 위방3기문화(BC 13C~11C) - 장가원상층문화(BC 11C~8C) - 옥황묘문화(BC 7C~4C) 등으로 북방계입니다. 한민족과 화하족의 만남은 BC 4세기에나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산동반도 남단은 논외). 그 후로는 너무 만남이 잦았네요. ^^;

이상의 검토를 반영하여 수정한 가설입니다.


1. 고대 조선은 전조선-후조선-위만조선의 3개의 정치체가 시간적으로 연속됨

2. 전조선 연혁

  a. B.C.24세기 후반, 평양성에서 건국

  b. B.C.21세기 백악산 아사달로 천도

  c. B.C.6세기 후조선에게 밀려 장당경으로 천도

  d. B.C.5세기 후조선에 흡수 (아사달로 복귀, 혹은 멸망)

3. 후조선 연혁

  a. B.C.10세기경 전조선의 서쪽에서 세력 성립

  b. B.C.6세기경 동진, 전조선의 중심지 백악산 아사달 접수

  c. B.C.3세기경 연나라에 패퇴 (진개)

  d. B.C.195년 위만에게 밀려나 한반도로 이동

4. 위만조선 연혁

  a. BC 195년 후조선 중심지 접수

  b. BC 108년 한나라에 패망


최종 결론은,

삼국유사, 제왕운기에서 나타나는 전조선-후조선에 대한 기사는 정확한 시점이나 위치, 사건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체로 큰 흐름에서는 일말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문헌안에서도 모순이 발견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기사들은 일연이나 이승휴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구전이나 구전을 기록한 고기록을 옮겨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조선이 세력교체를 당할 정도의 국가였는가 하는 점은 가능성 반반입니다. 신성자문화(쌍방문화)의 수준에 대해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사족.

- 청동기말기~초기철기시대(BC 4C~BC 1C)는 무척 흥미로운 시대라 생각합니다. 후조선의 패퇴(진개)와 멸망, 위만조선의 등장과 멸망, 한군현의 설치, 부여/한/마한/진한/변한/신라/고구려/백제/가야/옥저/동예의 등장 등등... 어느 정도 흐름이 잡히면 글을 써보고 싶은데, 올해 안에 될지 잘 모르겠네요.

- 신석기말기와 청동기시대의 고고학에 대해서는 계속 공부하려고 합니다. 90년대의 연구성과에 비해 2010년대의 연구성과가 월등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좋은 성과들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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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Marauder님의 댓글

개인적인 생각인데 통사보다는 주제별로 나누는게 좋을거같아요. 공부하는 과정에서 정리하는셈 치고 올리시는거면 상관없겠지만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그냥 전체적으로 큰 흐름을 한번 쭉~ 정리하는거라...

개별 사건으로 재미있어 보이는 건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그리고 사실 더 중요한게 이제부터 인데요...

1. 연 진개의 침공으로 후조선이 밀려난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그 후 후조선의 수도는 어디인지?
2. 위만이 처음 자리잡은 영역(진고공지秦故空地)이 어디인지? 이때 후조선의 수도는 어디인지?
3. 위만이 후조선을 몰아내고 차지한 영역의 범위는? 수도는? 물질문화는?
4. 이때 준왕이 도망한 곳이 평양인지? 금강인지? 물질문화는?
5.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패망시킨 후 설치한 한군현의 위치는? 이때 물질문화는?

전 연계철기가 후조선, 한계철기가 위만조선과 관련 있다고 보지만...
아직 갈길이 멉니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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