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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본 전조선-후조선 (2.본론-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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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리마인드 차원에서 제가 세운 가설을 다시 보겠습니다.

1. 고대 조선은 전조선-후조선-위만조선의 3개의 정치체가 연속됨

2. 전조선 연혁

  a. B.C.24세기 후반, 평양성에서 건국

  b. B.C.21세기 청동기문화의 시작과 함께 백악산아사달로 천도

  c. B.C.6세기 후조선에게 밀려 장당경으로 천도

  d. B.C.5세기 후조선에 흡수 (아사달로 복귀, 혹은 멸망)

3. 후조선 연혁

  a. B.C.12세기경 전조선의 서쪽에서 세력 성립

  b. B.C.6세기경 철기문화를 통해 세력이 성장하여 동진, 전조선의 중심지 백악산아사달 접수

  c. B.C.3세기경 연나라에 패퇴 (진개)

  d. B.C.195년 위만에게 밀려나 한반도로 이동

4. 위만조선 연혁

  a. BC 195년 후조선 중심지 접수

  b. BC 108년 한나라에 패망

(3.c, 3.d, 4번 항목은 지난 글에 나오지 않는 부분이지만 완결성을 위해서 덧붙였으니 일단 무시해주세요.)

제 가설에 이미 약점들이 보이지만, 가설의 평가, 수정 및 보완은 결론부에서 진행할 예정이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바로 앞의 글에서 "후조선"은 십이대영자문화(요서 동부)-정가와자유형(요동)으로 연결되는 세력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후조선"에 밀려난 "전조선"은 어떤 세력일까요? 당연히 BC 6세기 이전에 요동에 존재하던 기존세력일테고, 저는 마성자하층(신석기시대)-마성자(BC 18C~11C)-신성자(BC 10C~6C)를 그 주인공으로 봅니다.

전조선에 대해 더 알아보기 전에 잠깐 관점을 바꿔서, 동북아 청동기시대를 특징짓는 무문토기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자료들은 천선행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천선행 논문에서 독창적인 부분은 한반도 중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연계성을 추적하여 1,2,3차 무문토기문화권을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계통을 밝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적인 순서는 3->2->1->남한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는 기원전 2천년기에 대한 자료이므로 요서 동부의 십이대영자문화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자료는 요동지역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자료이니 참고하시고...

요동지역의 청동기 개시는 쌍타자2기, 고대산문화, 마성자문화, 단타자유적, 신암리3-1,2기 등으로 여러 지역에서 나타납니다. 이 지역들은 오랜기간 문화적 교류나 접경 현상 등이 발생하며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나갑니다.

위 자료는 마성자 문화가 주변문화와의 교류 및 통합, 그리고 기원전 2천년기 후반부에 단순한 문화 전파만이 아닌 직접적인 주민의 이동을 통해서 한반도로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료들이 왜 우리들이 단군의 자손이라 불리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단군"으로 상징되는 (전)조선은 이러한 이주와 문화전파의 현상이 집단의식속에 남아서 신화화 된 것이겠죠.(요동주민의 대량 이주는 기원전 1천년기 후반부에 또 발생하는데, 이 글의 주제와는 무관하니 여기선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조선이 "국가"였는가?

저는 전반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국가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영토를 보유하며 거기 사는 국민들로 구성되고 하나의 통치조직을 가진 집단"입니다. 전조선은 영토,국민은 있을지 모르나 하나의 통치조직은 없다고 봅니다. 기원전 2천년기 요동지역에서 발굴되는 유적에서는 계급 분화의 증거가 미비합니다. 따라서 전조선의 전반기는 "문화공동체"거나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고조선의 후반기인 기원전 1천년대에는 신성자문화, 십이대영자문화, 강상문화에서 계급 분화의 증거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BC 10세기부터는 국가/권력에 대해 논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생각해 보면 비파형동검의 등장이 BC 11~10세기로 알려져 있으니, 역시 무기(특히 검)가 등장해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고 해야 계급과 국가가 발생하는 듯 하네요. 물론 이때의 국가가 웅장하고 장엄한 중세시대 형태의 국가라고 상상하기는 어렵겠죠.

"단군"은 실존했는가?

단군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봅니다. "BC 24세기 후반에 중앙집권적 임금의 자리에 올라 대대로 왕위를 건네주는 만세일계의 지배자 가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규모 공동체의 어른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토기 등 도구 만드는 법, 농경, 주거,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며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주체들의 흐름"은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것이 "홍익인간", "재세이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삼국유사에 나타난 단군은 조선의 의인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이 단군은 신성자문화 단계에 들어와서는 권력의 주체로 실체화 되어서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겠죠.

위 그림은 전조선과 후조선의 강역과 중심지를 나타냅니다.

전조선의 중심지 중 평양성은 여전히 위치를 모르겠습니다. 백악산 아사달은 마성자-신성자문화의 중심지인 요동산지(요령성 본계)로 보입니다. 단군이 BC 6세기에 도망간 장당경은 압록강중상류로 추정됩니다.

(압록강 중상류는 후에 역계경이 망명한 진국의 위치 후보지라고 생각하고, 고구려 초기 유물(BC 3C~1C)이 나타나기도 하는 곳이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주제에 벗어난 얘기니 일단 생략합니다.)

고조선의 영역은 위 그림에서 색상이 들어간 부분입니다. 미미하게 시작되었으나 2천년기 후반부를 지나면서 한반도 전체와 북위 45도선에 도달하는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었다고 보여지네요.

후조선의 중심부는 고조선의 구성원이던 전반기 BC10C~7C에는 요령성 조양, BC6C~3C에는 요령성 심양으로 추정합니다.

후조선의 영역은 전반기에는 요서 동부에 한정되고, 후반부에는 위의 점선 영역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물질문화 현황을 감안한 것인데, 전조선의 나머지 영역은 자율적이면서도 후조선과는 상당한 교류가 있으리라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세형동검의 분포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 내용도 본 글의 주제를 벗어나니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아직 공부가 충분치 못해서 지석묘(고인돌)에 대한 얘기는 빼먹었는데, 지석묘를 제외하고도 이미 제가 얘기하려는 핵심은 전달 한 듯 합니다.


다음 글, 결론에서 제 가설을 평가하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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