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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본 전조선-후조선 (2.본론-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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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글이 길어질 듯 하여 2개로 나누어 올리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지난 글에서 동북아지역의 청동기문화에 대해서 테이블을 공유했는데, 이번 글에서는 해당 문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자료를 살펴보면 특기할 만한 사항이 위영자문화에서 기후(箕侯) 명문의 청동예기가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위영자문화는 한민족과 관련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기자 동래설은 부인됩니다. 또한 이 청동예기는 충돌을 통한 약탈의 결과물일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BC 6세기경에 특기할 사건이 보입니다. 바로 요서지역에 있던 십이대영자문화가 갑자기 요동으로 진출하여 정가와자유형을 형성한다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십이대영자문화가 요동으로 확장하면서 정가와자유형이 되고, 요서지역은 남동구유형으로 변화합니다. 이 정가와자유형은 심양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급격히 요동 전체 지역으로 확장합니다.

BC 6세기에 요서지역의 세력이 요동으로 진출하여 기존 문화를 대체한다?

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후조선입니다.

정리하면 후조선은 BC 10C에 요서지역에서 십이대영자문화로 형성되고, BC 6C에 요동지역으로 진출하여 전조선을 대체합니다. 십이대영자문화는 동일 지역의 전단계 문화인 위영자문화와는 계승관계가 약하고, 오히려 무문토기나 비파형동검을 통해 마성자-신성자문화와 연계성을 갖습니다.

비파형동검은 요해둔유형 또는 신성자문화에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크나, 십이대영자문화에서 만개했습니다. 제 가설로 설명하자면 후조선은 BC10세기경 고조선의 거수국(무인집단)으로 시작했지만, BC 6세기경 본국인 전조선을 밀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조선의 성격과 연혁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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