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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토기를 통해 본 단군조선 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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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선사시대 한반도 상황"에서 청동기시대에 여러가지 무문토기가 존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귀리식, 미송리식, 돌대각목문토기, 팽이형토기, 구멍무늬토기, 역삼동식 토기, 가락동식 토기, 흔암리식 토기, 송국리식 토기, 점토대토기 등


이 토기들의 의미를 저 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학자들의 분석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고고학 개론서에서는 무문토기가 갖는 구체적인 의미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아서 이리저리 검색하던 중 눈에 띄는 논문(천선행, 전라문화유산연구원장)을 발견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2페이지는 고고학개론서에 나온 청동기문화 구분, 3페이지는 논문에서 정리한 동북아지역 각 문화의 상대연대입니다. 여기서 절대연대는 제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추가했습니다. 이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시기에 대한 감을 잡으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연대가 정확한 건 아니고 학자마다 상대연대에 대한 의견도 다르므로 오차가 있다는 점은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천선행 논문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반도 남부의 무문토기 문화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그에 영향을 주는 주변문화는 1차, 2차, 3차 무문토기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동북아에서는 하가점하층/하가점상층/위영자문화를 제외한 모든 문화단위가 서로 연계한다. 한반도 남부 조기/전기 문화의 경우, 돌대문토기문화와 금강유역은 요동지역 주민의 직접적인 이주로 성립되었다.

이 논문이 국내학계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감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제 제 의견입니다.


단군조선과 관련지어 이런 자료를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네요.

1. B.C.2000년 전후 요동산지로 이동한 단군조선 집단은 마성자문화를 형성

2. 단군조선은 B.C.15~13세기에 영향력을 점차 확장하여 요동남단과 서북한과 교류하고, 한반도 남부까지 직접 이주하며 교류

3. B.C12~11세기에 모종의 사건(?)으로 청천강 유역의 집단이 금강유역으로 이동하여 가락동유형 형성

시사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0. 단군조선의 초기 500년(B.C.2300~1800년)은 신석기 시대임

1. 단군조선이 앞선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한반도 전체를 영향권에 두는데는 300년 이상의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됨

2. 이러한 확장은 문화적 교류나 직접적인 이주를 통해서 이루어짐

3. 기원전 2천년기에도 동북아에는 지역별로는 독자적인 세력과 복잡한 교류 관계가 형성됨

4. 요서 동부지역이 우리민족의 강역에 들어오는 최초의 시기는 B.C.10세기경임

5. 요하문화(소하서-흥륭와-조보구-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는 단군조선 성립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으나 직접적인 계승관계는 아님 (참고. 하가점하층과 하가점상층은 계승관계가 아니며, 요하문명이라 일컫는 요하문화들은 하가점하층문화에서 맥이 끊김)

6. 요동에서 한반도로 이주는 단군조선 이후의 역사인 준왕조선-열국시대에도 대규모로 재현되고 있음 (끊임없는 뒤섞임의 과정)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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