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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조선-연진한 경계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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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1세기가 철기시대 전기(또는 초기철기시대)인데, 문헌에 따르면 이 시기에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사건이 몇가지 있습니다.


1. 전국연의 침공으로 인한 후조선의 패퇴 (기원전 300년경)

2. 위만조선 성립 (기원전 3세기말)

3. 위만조선의 후조선 침공 및 준왕의 남한 이동 (기원전 2세기초)

4. 한나라의 위만조선 침공 및 한군현 설치 (기원전 2세기말)

5. 부여, 신라, 고구려, 백제의 성립 (기원전 1세기)


​통설에서는 고조선(후조선-위만조선)과 연의 경계를 청천강으로 보고 있고, 위만조선이 철기시대인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나무위키 참고).


문제는 이 기록들과 통설이 얘기하는 시공간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고고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입니다. 제가 통설을 보며 갖는 의문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연과의 충돌 이전에는 후조선과 연나라간에 교류가 없었을까?

2. 연과의 충돌 이후, 후조선은 선진문화(철기) 습득을 무시했을까?

3. 연, 진, 한이 설치한 요동군은 모두 동일한 군현인가?


몇가지 자료를 보며 흥미로운 결론에 이르렀는데 함께 보시죠.



​먼저 지난 글에서 위와 같이 무문토기문화권을 통해서 전조선과 후조선을 설명 드렸습니다. 그 중 후조선의 4세기까지의 상황을 말씀 드렸는데, 그 후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후조선의 중심지는 2번 이동을 합니다. 첫번째는 기원전 6세기에 요서에서 요동으로 이동하고, 두번째는 기원전 3세기초 전국연의 침공으로 요동에서 서북한으로 이동합니다.



위 그림은 요서의 십이대영자문화가 요하 유역의 정가와자유형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그 후 3세기 초 전국연의 침공을 받아 요하 유역을 상실하고, 중심지는 서북한으로 이동하고 후조선-연의 경계는 천산산맥을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이러한 후조선의 중심지이동은 세형동검과 점토대토기 유물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는데, 관련해서는 참고문헌의 박순발(1993, 2015)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명도전은 연나라 화폐로 알려져 있는데, 위 그림은 기원전 4~3세기 동북아 교역 네트워크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의아한 점이 하나 있는데, 명도전 같은 강력한 화폐 경제력과 앞선 철기문화를 가진 연나라가 왜 진나라 같은 변방 국가에 밀렸는가 하는 점입니다. 리더의 무능함 때문일까요?)



위 그림은 연진한 시절 후조선과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한 요동군의 연혁입니다.


​연나라 시절에 최초로 요동군이 설치되었으나, 정식 군현이라기 보다는 요새 정도에 불과했고 그 마저도 연나라 내부 사정으로 단기간에 운영이 중단된 것으로 보입니다.


진나라는 연에 비해 조금 더 요하 동쪽을 확보하며 요동군을 설치했으나 역시 단명하였고, 한나라는 진나라보다 후퇴하여 요수를 경계로 요동군을 운영합니다.


요동외요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저는 박순발(1993)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세죽리-연화보문화를 연문화가 아닌, 연 침공으로 인한 요서-요동 지역에서 발생한 유이민에 의해 형성된 문화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건 위만조선 멸망 후 기원후 2년의 요동군인데,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천산산맥 동쪽의 현은 위만조선 멸망 후 설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건 위만조선의 초기 상황입니다.

진한 교체기의 불안정한 상황에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동북아 전체에서 다양한 유민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세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후에 그 중심에는 위만이 서게 되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상보촌유형과 세죽리-연화보문화를 감안하면 후조선-연진한의 경계는 요하 이동~천산산맥 서쪽에서 밀고 밀리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참고하세요.



* 참고자료

서영수 외, 2008, "요동군과 현도군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박순발, 1993, 「우리나라 초기철기문화의 전개과정에 대한 약간의 고찰」, 『고고미술사론』 3, 충북대학교고고미술사학과

박순발, 2004, 「요녕 점토대토기문화의 한반도 정착 과정」, 『금강고고』 1, 충청문화재연구원

박순발, 2015, 점토대토기문화의 기원과 전개, 한국청동기학보 제16호

이후석(Yi Whoseok). "고고자료를 통해 본 만번한." 東北亞歷史論叢 -.57 (2017): 116-169.


관련자료

댓글 1

흥무대왕님의 댓글

제 글의 논지와 유사한 논문이 이미 발표되었네요.

조원진, 2017, 고조선의 발전과 대외관계 연구, 세종대학교 박사학위논문

http://m.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a861bd2959eb6eedffe0bdc3ef48d419&keyword=#re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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