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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토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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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문헌 분석을 통한 고조선의 연혁을 추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최근에는 청동기시대의 토기에 대해서 공부중이었는데 1차 정리가 되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청동기시대는 무문토기시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무문토기는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미송리형토기

2) 팽이형토기

3) 무문토기(민무늬토기)

4) 점토대토기(덧띠토기)



광의의 무문토기에는 위의 토기가 모두 포함되지만, 이 글에서는 무문토기라는 용어를 지역은 남한, 유형은 돌대문토기/가락동식/역삼동-흔암리식/송국리식/검단리식 유형을 가리키는 협의로 사용하겠습니다. 또한 이 글에서는 토기, 토기문화, 토기문화권을 엄밀히 정의하지 않고 사용하니 문맥에 맞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미송리형토기



위 그림은 미송리형토기문화권의 분포와 권역을 보여줍니다(배진성 2015). 각 권역의 편년과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송리형토기 전체 편년 : 상한 기원전 13~12세기, 하한 기원전 6세기경

A, B, C 지역 : 초기 미송리형토기의 동시 등장, 지역색 존재

D, E 지역 : 요동 지역에 비해 늦게 전파, 특히 E지역에서는 미송리형토기가 팽이형토기문화에 흡수,변형됨


미송리형토기는 권역별로 각자 지역색이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지역이 중심이 되어 발생했다고 보기 보다는 동시기에 A,B,C지역에서 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초기 중심지는 요북지역(A지역)의 마성자문화로 보는 것이 다수 연구자들의 의견입니다. 미송리형토기문화는 기원전 5~4세기경에 소멸되고 점토대토기문화로 대체됩니다. 그리고 미송리형토기문화는 길림 일대의 서단산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송호정 2007).


​학자에 따라 A권역을 초기 고조선으로, 미송리형토기문화권을 그 영향권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배진성 2015). 그와 달리 이를 고조선 왕국의 한 지역문화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오대양, 2015). 개인적으로는 제가 '전조선'이라고 추정한 마성자문화에서 시작한 토기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2) 팽이형토기



위 그림은 팽이형토기의 분포를 보여주는데, 주요 분포지는 평안남도와 황해도 지역입니다(송호정 2014). 오강원은 팽이형토기문화를 주거지 6단계와 무덤 5단계로 시기 구분하였는데, 각 단계별 편년은 다음과 같습니다(오강원 2022).


​주거지 I단계 : 기원전 12~11세기

주거지 II단계/무덤 I단계 : 기원전 10~9세기 중엽 (무덤 I단계는 기원전 9세기 전후엽~중엽)

주거지 III단계/무덤 II단계 : 기원전 9세기 중엽~8세기 전엽

주거지 IV단계/무덤 III단계 : 기원전 8~7세기

주거지 V단계/무덤 IV단계 : 기원전 6~4세기

주거지 VI단계/무덤 V단계 : 기원전 3~2세기


팽이형토기문화는 강한 문화적 요소의 통일성을 가지고 대동강 유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습니다. 미송리형토기문화에 일부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문화적 독자성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기원전 4세기의 중국문헌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송호정은 팽이형토기문화를 청동기의 고조선으로 보고 있습니다(송호정 2014).


​특정지역에서 천년 넘게 정체성을 유지하는 고집센 집단이라... 일단 기억해 둡니다.


3) 무문토기



이 글에서 무문토기는 위 그림에서 "한반도 남부 무문토기문화권"을 의미합니다(천선행 2018). 편년은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하지만 대략 아래와 같이 볼 수 있습니다(이청규 2015).


전기 전반: 돌대문토기ㆍ이중구연토기 (기원전 13~12세기)

전기 후반 : 가락동식토기ㆍ흔암리식토기 (기원전 11~9세기)

중기 : 송국리식토기ㆍ검단리식토기 (기원전 8~6세기)

후기 : 수석리식 토기 전기 (기원전 5~4세기). 단, 이 단계는 점토대토기이므로 별도로 논의


위 그림은 조진선(2020)에서 발췌한 그림입니다. 각 무문토기 형식의 시간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문토기문화를 고조선과 직접 연결시켜서 보는 연구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돌대문토기문화의 기원 등 전기 무문토기문화가 이주나 전파 등에 의해서 요동과 서북한 지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천선행 2018 외).


4) 점토대토기



점토대토기는 요서에서 요동으로,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전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점토대토기의 단계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이형원 2018).


1단계 : 요서 조양 원대자, 요동, 서북한. 기원전 8~7세기

2단계 : 요서 수천유적, 요동(요북의 미송리형문화 대체 시작), 서북한. 기원전 6~5세기

3단계 : 요서의 건창 동대장자, 요동의 정가와자, 상마석, 남한에는 예산, 아산, 대전 등. 기원전 4세기

4단계 : 요서지역 소멸, 요동은 본계 상보촌, 무순 연화보유적, 서북한은 영변 세죽리유적, 남한은 완주 갈동, 신풍유적 등. 기원전 3~2세기 (세죽리-연화보 유형, 세형동검과 철기 공존)


점토대토기의 등장은 십이대영자문화(조양 일대, 9~7세기)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점토대토기는 요중 지역에서 해로를 거쳐 한반도 중서부지방으로 도달하였으며 중서부지방에서 한반도 각지 및 제주도와 일본열도로 재파급된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서북한 지역인데, 일부 연구자는 서북한에 점토대토기가 전파되었다고 보았으나(박순발 2003) 최근에는 서북한을 건너뛰었다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이형원 2011, 박진일 2013).


남한 지역만 놓고 봤을때, 점토대토기는 아래와 같이 5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박진일 2007).


1단계 : 중서부해안 지역에 점토대토기 등장 (기원전 500년경~)

2단계 : 재지문화와 접변 시작.

3단계 : 세형동검 등장. 남한 전지역으로 확산 (기원전 400년경~)

4단계 : 전국계 철기문화와 삼각형점토대토기 등장. 세형동검 쇠퇴. (기원전 200년경~)

5단계 : 단조철기, 목관묘군, 와질토기 등장. 중서부 해안지역으로 漢계 유물 유입 (기원전 100년경~)


이를 도식화 한 것이 아래의 표입니다.​​


남한지역의 점토대토기는 비파형동검/세형동검/초기철기 시대 모두에 걸쳐있습니다. 점토대토기와 세형동검, 초기철기의 등장은 동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정확히 이해해야겠습니다. 남한지역의 점토대토기의 기원과 전개에 대해서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얘기가 있으나, 여기선 이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이형원은 토기의 관점에서 기원전 8~2세기에 요서와 요동지역에 존재하는 점토대토기 관련 물질문화가 문헌 속의 고조선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아래와 같은 그림을 제시했습니다(이형원 2018).



이형원 외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점토대토기를 고조선과 연계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결론은?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을 보면 연구자들이 고조선의 토기문화로 보는 후보는 미송리형토기문화, 팽이형토기문화, 점토대토기문화입니다.


​저는 미송리형토기문화가 전조선(요동)이고, 점토대토기문화가 후조선(요서,요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요동지역의 미송리형토기문화->점토대토기문화로의 교체만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서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점토대토기문화는 위만조선(요동)과 한(남한)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팽이형토기문화는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대동강유역은 후조선이나 위만조선의 영역이었던 적은 없고, 늘 독자적인 세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미송리형토기문화 소멸 시기에 일부 세력이 대동강유역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송호정 2014)을 감안해보면, 팽이형토기문화는 전조선과 친연관계에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기원전 5세기경 전조선 소멸 시 일부 세력의 이동과 함께 정신적 계승자도 자처하여 단군 설화와 평양의 연계가 생겨난 건 아닐지. 또한 팽이형토기문화 세력은 후조선과의 관계는 몰라도 위만조선과는 긴장관계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로 인해 한나라의 군현 설치가 먼저 이뤄진 것이라 보여집니다. 진번, 임둔도 동일. 기원전 2세기의 팽이형토기문화 세력의 이름은 낙랑이었거나 진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의 무문토기문화는 점토대토기문화와 결합하여 적어도 기원전 4~3세기경에는 한의 소국들이 성립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문토기문화인은 한의 기층세력이 되었겠네요. 그리고 기원전 195년경 후조선 준왕이 한으로 망명한 사건은 한 성립 후의 일로 보입니다.


이상입니다.


​사족.

1. 전조선-후조선-위만조선의 삼조선설이 청동기 토기문화 이해에 도움이 되네요.

2. 기원전 4~3세기경 고대 한국에는 중국 동북지역의 후조선과 서단산문화 세력(부여의 전신), 서북한의 팽이형토기문화 세력(진국/낙랑?), 남한의 한(삼한의 전신) 등 크게 4개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3. 진국 운운 했지만, 삼국사기나 중국정사가 마한-백제의 고고학 증거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걸 감안한다면 고대사는 문헌기록 보다는 물질문화 그 자체의 흐름에 집중하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최근 들어 더 강해지네요.


[참고문헌]


-- 미송리형토기 --

김미경(Mikyoung Kim). "美松里型 土器의 변천과 성격에 대하여." 韓國考古學報 60.- (2006): 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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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요동지역 청동기시대 문화의 양상과 전개 – 소위 쌍방·미송리문화를 중심으로–." 東洋學 61.- (2015): 123-151.

송호정. "미송리형토기문화에 대한 재고찰." 韓國古代史硏究 0.45 (2007): 5-38.


-- 팽이형토기 --

오강원(Oh Kangwon). "팽이형토기문화 무덤의 출현과 전개." 호서고고학 -.51 (2022): 36-67.

송호정. "청동기시대 대동강 유역 팽이형토기문화와 고조선." 東洋學 55.- (2014): 141-168.


-- 무문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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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토대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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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댓글 13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아... 그 분과 대화하다 보면 대화가 감정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 차단한다고 선언했더니... 빈정 상했나 봅니다. ㅎㅎ

Analogue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고조선을 설명하려면...
비파형동검 출토 분포가...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싶네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의견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비파형/세형동검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동검은 토기보다 중요성이 떨어집니다. 학계에서는 특정 문화를 정의할 때 여러가지 유물의 복합체를 보지만, 그 중에서도 일상 용기인 토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규모로 발굴되는 동검은 위신재로 서로 교환, 사사 가능 하기 때문에 실제 영역과는 관련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제 다음 글인 "청동기시대 시대구분"을 보시면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의 분포 지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서로 다른 형식의 동검이 존재하고, 또한 너무 넓게 퍼져있어서, 특정한 정치체를 설명하기는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동검의 분포와 토기의 분포가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또님의 댓글

약간 뜬금없는 댓글이지만, '조선'이라는 용어는 중원식 용어라고 보여집니다.'조선'이라 불리운 토착세력은 '낙랑'입니다.그런데 玄菟郡을 應劭는 故眞番,朝鮮胡國라고 소개했습니다.이말인즉 진번 역시 하나의 '조선'이요 라는 말인데 이제는 '조선'이라는 용어에 대해 의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진번이 또 다른 '조선'이라는 것은 염철론의 기록에서도 알수 있습니다.염철론에 <진나라가 沛水를 건너 조선을 멸망시켰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여기의 '조선'은 진번으로 생각할수 밖에 없어요.그 이유는 眞番에 대해 徐廣은 遼東有番汗縣이라고 하였고 한서지리지의 遼東番汗縣에는 沛水가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沛水를 건너 멸망시켰다는 '조선'은 진번일 확률이 가장 크고,여기의 '조선'이 낙랑이 아닌 이유는 낙랑(역시 조선)은 진나라에 멸망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낙랑을 제외한 다른 토착세력은 대부분 경우에 모두 토착어로 불리우는 마당에 이상하게 낙랑만 낙랑&조선으로 번갈아가면서 불리웠다는 점이 특이합니다만...이제는 '조선'이라는 용어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단어의 기원은 전혀 몰라서... 한가지 의견이 있다면, 낙랑(평양)은 진국(평안남도,황해도)의 수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이라는 용어를 의심함이 어떤 의미신지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의견 드릴만한 내용이 떠올라서 추가 답글 드립니다.

1. "현토군, 고진번조선호국"은 <현토군은 예전의 진번이고, 군설치 직전에는 조선이다>로 해석됩니다. 다만 현토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니 이해하기 힘든 글이 되겠네요.

2. <진나라가 패수를 건너 조선을 멸망시켰다> 는 전형적인 과장법(춘추사관)으로 보입니다. 후조선과 진나라는 국경분쟁이 있었을 뿐, 국운을 건 전쟁은 없었습니다.

3. 진번은 요동반도에 있다가 기원전 300년경에 연의 침공을 피해 황해도로 이동했다는 이동설이 있습니다.

4. 저는 조선과 낙랑을 별개의 정치체로 봅니다. 기원전 2세기로 한정해서 본다면, 위만조선=요동, 낙랑(진국)=평안남도, 진번=황해도, 임둔=원산만 일대라고 생각합니다. 진국,진번,임둔 등의 세력들이 위만조선의 통제하에 있었다고 보며, 한나라 사관들의 입장에서는 모두 조선으로 퉁치는 일도 빈번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고대중국문헌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인생의 낭비로 보입니다. ^^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1.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3. 진번 이동설 관련해서는
조원진(Cho Won-Chin). "고대 진번의 변천 연구." 先史와 古代 -.66 (2021): 147-182.,
김기민. "기원전 3~2세기 고조선의 영역변천과 眞番의 이동." 국내석사학위논문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2. 서울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논문 확보가 어렵다면 제게 알려주세요.

4. "진번은 조선이다", "낙랑은 조선이다" 등등  이런 류의 문구는 모두 비슷한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진번방중국" 또는 "진번방진국" 등 위만조선에 복속하고 있던 나라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모두 조선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5. 중국고대문헌이 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늘 물질문화로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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