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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시대구분 - 학계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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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토기문화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동기시대 시대구분에 대한 논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최근 3~4년간 관련 논문들이 여럿 나왔고, 아래와 같이 청동기 시대구분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있었네요.

- 국립청주박물관-한국청동기학회 공동학술대회, 청동기시대의 설정과 분기 [2020년 05.22]

- 국립문화재연구원, "집중토론 한국고고학 시대 구분, 이대로 좋은가?", 2022년


​평소 관심있던 주제이기도 하고 카페에 이런 내용의 글은 없는 듯 하여 학계의 최근 동향을 소개 드립니다.


먼저 한반도에서도 남부와 북부, 한반도 이외의 공간이 요서,요동,연해주 각각에서 전개된 시기별 청동기문화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대상이 되는 시공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시대구분의 쟁점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대안은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순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1) 청동기시대 공간 범위



​(조진선 2020)


​청동기시대의 공간에 대해서 여러 연구자들이 정의를 내렸는데, 박순발(2016)의 '극동아세아 농렵구', 천선행(2018)의 4개의 무문토기문화권, 조진선(2020)의 한국고대문화권, 이후석(2022)의 단경식동검문화권 혹은 고조선문화권 등 모두 대략적인 범위가 일치합니다. 한반도-요서/요동-연해주. 따라서 공간적 범위는 합의되었다고 보입니다. 이 공간은 시기에 따라 포함되거나 이탈하는 지역이 있다는 것을 감안 해야겠습니다(ex. 요서).

(저는 "한국고대문화권"이라는 용어가 한국과의 연계를 잘 나타내며 특정 물질문화에서 독립적이기에 청동기시대 공간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하기에 앞으로는 이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2) 청동기시대 시간 범위



위 그림은 천선행(2022) 논문에서 발췌했는데, 해방 이후의 수많은 연구사적 논의는 이 그림 한장으로 갈음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위의 각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시대구분의 대상 공간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 해야겠습니다. 위 그림에서 특징적인 점은 시간이 지날 수록 청동기시대의 상한이 올랐다는 점과 초기철기시대의 상한과 하한도 올랐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누적된 유물 발굴의 성과겠죠.


2000년대 들어와서는 청동기의 시작은 기원전 2000년경, 철기의 등장은 기원전 400~300년경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3) 시대구분의 쟁점과 대안


​시대구분에 있어서 쟁점은 크게 2가지입니다. "초기철기시대"라는 용어의 적절성과 시대구분에서 "고조선"을 언급하지 않는게 타당한가 하는 점입니다.


​초기철기시대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고 연구자들이 꼽은 이유는, 1. 점토대토기, 세형동검, 철기의 등장 시점이 서로 독립적이고 지역별로 상이한 점, 2. 단순히 새로운 물질문화가 등장했다고 사회문화가 변동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천선행 2022 외). 또한 기원전 9~8세기경, 기원전 6~5세기경, 기원전 4세기경 등의 시점에 획기적인 문화변동이 확인되는데, 이와 관련되어 있는 고조선이라는 정치체를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천선행 2022)



(이후석 2022)



(조진선 2020)


위의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의 문화사회적 변동 양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대안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초기철기시대"를 폐지하고, 기원전 6세기 또는 기원전 4세기까지를 "청동기시대", 기원전 100년까지를 "고조선시대", 이후를 (원)삼국시대 또는 삼한시대로 정의 (이후석 2022, 조진선 2020 외)

2. "초기철기시대"를 폐지하고, 기원전 100년까지를 청동기시대, 이후를 (원)삼국시대 또는 삼한시대로 정의 (천선행 2022)


​천선행(2022)은 2안에서 청동기시대 전체를 "고조선시대"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2가지 안 모두 "초기철기시대"라는 용어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합니다.


** 개인적 결론


"초기철기시대"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저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는데, 관련해서 학계에서 치열한 논의가 되고 있고, 논문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어서 기쁩니다.


역사동호인인 제 생각에는 공간범위는 당연히 한국고대문화권으로, 시간축은 한국고대문화권 중 변화가 가장 빠른 지역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중국,일본은 하상주단대공정이나 죠몬시대/야요이시대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청동기시대"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데, 우리나라만 three-age system의 구분법을 사용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보입니다. 아직도 "금석병용기"의 유령이 따라 다니는 걸까요? 따라서 2안, 그 중에서도 고조선시대(기원전 2000년~100년)의 용어 채용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조선이 한국고대문화권 전체를 장악한 것도 아니고, 부여/낙랑(진국?)/진번/임둔/한 등 다른 정치체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삼조선설까지 채용하면 좋으련만. ㅎㅎ)

앞으로 학계에서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참고문헌]

국립청주박물관-한국청동기학회 공동학술대회 청동기시대의 설정과 분기 [2020년 05월 발행]

박순발, 2016, 「제1장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2: 編年』, 서경문화사.

이후석, 2022, 「청동유물을 통해 본 고조선의 시공간성」, 『고조선사의 시공간과 그 주변, 연구사적 검토』, 2022년 제2회 예맥역사학회 4월 연구발표회, 예맥역사학회.

정인성, 2019, 「한국고고학에서 ‘초기철기시대’ 그리고 ‘고조선시대’」, 한국상고사학보106, 한국상고사학회.

조진선, 2020,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시기구분 – 금속기의 출현과 정치체의 등장을 기준으로 -」, 한국청동기학보27, 한국청동기학회.

천선행, 2018, 「한국 무문토기문화의 공간적 범위에 대하여.」, 한국청동기학보 22, 한국청동기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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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Analogue님의 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청동기 시대로 구분하긴 하지만...
그때까지 대부분 석기시대의
농사 도구를 사용했다는 내용을

역사 스페셜에서
본 기억이나네요.

농기구 유물도
많이 남아있더군요.

울티마툴레님의 댓글의 댓글

청동기는 농사도구로 사용된 예가 없었습니다. 목재나 석재가 계속 사용되었고 청동기는 종교적 신분위세적 도구로 사용되었죠. 이유는 주석이 희귀광물이었기 때문이죠. 철기시대가 도래하고 나서야 철기는 농사도구와 무기류로 확장되었고 청동기는 여전히 상징도구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청동기시대가 중요한 것은 청동기가 사용되면서 전쟁이 활발해졌고 약탈에 의한 생산력 증대ㅡ노예노동ㅡ가 가능해져 승리자들은 과거보다 현격히 많은 생산물을 가져감으로써 계급분화가 확연해졌으며 그 위세를 떨치는데 청동기가 사용되면서 추방사회에서 국가로 넘어가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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