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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조선상고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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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 (이하 신채호) 께서 1931년에 발표한 《조선상고사》는 많은 역사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큰 영향을 받았는데, 지난 일년간 정리한 가설(조승완-김상설)과 《조선상고사》가 어떻게 다른지 확인 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참고한 책은 다음 출판본입니다.

단재 신채호 지음/김종성 옮김, 《조선상고사》, 위즈덤하우스, 2014


《조선상고사》는 아래와 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1편 총론

제2편 수두시대

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

제4편 열국쟁웅시대 (중국과의 격전시대)

제5편 고구려의 전성시대

제6편 고구려의 중쇠(中衰)와 북부여의 멸망

제7편 고구려-백제의 충돌

제8편 남방 제국의 대 고구려 공수동맹

제9편 삼국 혈전의 시대

제10편 고구려의 대 수나라 전쟁

제11편 고구려의 대 당나라 전쟁

제12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이 중 중요한 내용 위주로 그동안 제가 공부해온 단군조선~5세기까지의 기간만 살펴보겠습니다. 즉 제2편~제7편까지입니다. 아래 내용 중  쌍점(콜론) 이하가 제 의견입니다.

제2편 수두시대

. 대단군이 삼한(신한,말한,불한)을 세움 :삼한은 진번조선을 진조선-번조선으로 해석한 오해에서 비롯함. 삼조선은 단군-준왕-위만으로 판단함. 불일치.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 :준왕조선이 기자 전설을 갖고 있는 건 맞으나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했는지는 불확실함. 유보

.기원전 10세기경부터 대략 오륙백 년간 대단군 조선의 전성시대 :쌍방문화와 그 영향권 (난하 이동 전역)을 생각하면 동일한 관점임. 일치

.기원전 7세기말 조선-고죽-불리지 대 제-연-진나라 전쟁의 결과로 조선 쇠약 :의견 없음

.기원전 323년 기자의 자손이 불조선의 왕이 됨 :준왕조선이 단군조선을 밀어낸 사건은 기원전 500년경으로 추정함. 불일치

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

.삼조선은 신조선(흑룡강성 합이빈), 말조선(평안도 평양), 불조선(요령성 영구). 신말불-진마변-진막번 :합이빈은 부여, 영구는 진번, 평양은 한으로 단군조선 거수국들의 중심지로 보임. 불일치

.연 진개 기사의 만번한은 개평(요령성 개주시) 부근 :일치

.조선-연나라 경계인 패수는 요령성 해성시의 해성강 :조선-연나라 경계를 태자하로 파악하나, 대략 위치는 일치함.

.위만의 왕검성은 개평(요령성 개주시) 동북 (한서 지리지의 요동군 현독현) :본계시 인근으로 보고 있음. 불일치

.말조선의 초기 도읍은 평양이었으나 월지국으로 천도, 후에 기준에게 왕위 탈취 :말조선은 없고, 한이 있음. 준왕이 평양으로 이동한 것은 맞음. 절반 일치

.기준의 월지국은 충남 공주 부근 :목지국을 공주로 판단. 일치

.옛 도읍 평양에는 최씨가 낙랑국 수립 후 주변 25개국을 복속 :위만조선 잔여세력이 최씨 낙랑국 수립. 사건의 전후관계가 다름. 불일치

제4편 열국쟁웅시대 (중국과의 격전시대)

.고구려 건국은 기원전 200년경. 이때 신조선이 고구려,북부여,동부여로 분립 :고조선의 거수국으로 원고구려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공식 건국은 삼국사기를 신뢰함. 불일치

.부여는 북부여(하얼빈)와 동부여(훈춘). 동부여는 후에 남부여가 되었다가 북동부여(훈춘), 남동부여(함흥)로 나뉨 :의견 없음

.한사군은 요령성의 해성,개평 등지 :한사군은 요하 인근으로 판단함. 일치

.낙랑국과 낙랑군은 별개 :일치

제5편 고구려의 전성시대

.후한 광무제가 요동군을 지금의 난주(?)로 옮김 : 의견 없음

.1세기말 후한의 요동 침탈. 2세기 초 고구려의 요동 회복 :의견 없음

제6편 고구려의 중쇠(中衰)와 북부여의 멸망

.고발기의 난으로 요동 일부를 공손탁에게 빼앗김 :의견 없음

.공손씨는 양평(요양)에 도읍을 두고 난하이동에서 요동반도까지 점유 :공손연은 천산산맥을 넘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 일치

.서안평은 양수(梁水?) 부근 :양수 위치 확인 불가하나 요동 서부라고 본다면 일치

.동천왕의 평양 천도 :일치

제7편 고구려-백제의 충돌

.남낙랑의 남부에서 장씨가 대방국 건설 :3세기 말갈이 황해도 대방국 건국. 사건의 맥락이 다르므로 불일치

.기리영 사건은 위나라 낙랑군/대방군과 낙랑국 대 백제 고이왕의 대결 :기리영 사건은 고-위 전쟁 시 한성백제-대방국의 고구려 지원을 의미함. 불일치

.책계왕 전사는 남낙랑과 동부여가 진나라와 함께 백제를 침공 :책계왕은 요서 경락 중 전사. 불일치

.분서왕은 남낙랑의 자객에게 암살 :분서왕은 낙랑군의 자객에게 암살됨. 불일치

.소수림왕이 국내성으로 다시 천도 :소수림왕의 천도 사실 없음. 불일치

.근초고왕이 상한성(황해도 재령)으로 천도 :근초고왕의 천도 사실 없음. 불일치

.광개토왕의 공격에 아신왕이 신위례성(충청남도 직산)으로 천도 :아신왕 천도 사실 없음. 불일치

.광개토왕이 안시성(요령성 개평 부근)으로 천도 :광개토왕 천도 사실 없음. 불일치

.장수왕의 남진정책 :장수왕은 북진정책을 펼침. 불일치

.신라-백제-임나가라-아라가라 4국 동맹 :백제의 주도하에 남방 각국 협력함. 일치

총 31건의 주요 사건 중 9건의 일치, 15건의 불일치, 5건의 의견 없음, 2건의 유보가 있네요. 조승완-김상설은 고고학과 삼국사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신채호는 삼국사기 보다는 지금은 사라진 고서적들을 참고했다고 보여집니다. 그 참고서적들을 확인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의견이 맞는지는 단언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재로서는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대략적인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입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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