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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조선들의 시공간과 관련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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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단군조선/준왕조선/위만조선의 시공간과 관련 유물을 1차로 정리해 봤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이 옳은지는 고고학 공부를 하면서 차츰 검증해 나갈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은 웬만큼 올렸으니 당분간은 더 올릴 내용이 없네요. ^^;



※ 이 내용은 조승완-김상설을 바탕으로 제가 추론한 내용입니다.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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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울티마툴레님의 댓글

첫번째 그림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두번째부턴 동의가 안되네요. 위만이 준왕정권을 뺏은후 대읍과 소읍을 합병해나갔다고 나왔습니다. 준왕정권은 고죽국정도를 지배하던 번국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위만정권은 갑작스레 세력을 불린 외부세력이고 단군조선의 사회정치경제적 모순을 잘 이용했기에 전성기에 지금의 대릉하까지 지배했다고 봅니다. 왜냐면 당시 기술력으론 요택을 극복하지 못했고 요택 윗부분은 동호나 북부여등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즉 저는 위만정권의 왕검성을 하가점지방으로 봅니다. 위만에게 그곳을 뺏기고 단군조선은 완전히 요동과 서북한으로 물러났다가 소멸되었다고 봅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의견 감사합니다. 논의 진행을 위해 몇가지 질문 드립니다.

1. 준왕정권은 고죽국정도를 지배하던 번국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 문헌이나, 유물로 증거 할만한 것이 있을까요?

2. 위만이 준왕정권을 뺏은후 대읍과 소읍을 합병해나갔다고 나왔습니다. -- 저와 동일한 주장입니다. 지역만 다를뿐.

3. 위만정권은 ... 전성기에 지금의 대릉하까지 지배했다고 봅니다. -- 연 물질문화가 천산산맥까지 다다른 건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가요?

4. 위만에게 그곳을 뺏기고 단군조선은 완전히 요동과 서북한으로 물러났다가 소멸되었다고 봅니다. -- 문헌이나, 유물로 증거 할만한 것이 있을까요?

이상입니다.

울티마툴레님의 댓글

1. 4. 저역시 가설을 세우고 문헌조사하고 고고학적 증거를 밝혀야 하니 차후의 문제로 돌리렵니다. 문헌은 이미 사기에 나와있습니다. 위만이 패수(난하의 지류)를 건너 머물렀다고 하니 위만은 준왕의 변경을 지킨 번이 된 것이고 고죽국이 난하서쪽에 있었단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3. 교류의 켤과로 봅니다. 그리고 전국연의 물질문화 유적이 어디일까요? 유물말고요.

2. 당시 요택에.대해선 어찌보시나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1,4. 알겠습니다

3. 논리는 이해했습니다.
유물이 영역을 나타내는 경우와 교류의 결과로 보는 경우의 기준이 뭔지 저도 궁금하네요. 아마 유물의 수와 빈도가 기준이 될거 같은데 더 공부해 봐야겠습니다. 명확한 기준이 없을 경우, 동일한 논리로 고대 조선의 영역도 축소 될 수 있으니까요.
전국연 물질문화 유적의 위치는 확인해 보고 답글 남길께요. 시간은 걸릴 듯...

2. 요택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위만조선이 요택과 관련된 기록이 있나요? 전 처음보는 내용이니 설명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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