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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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도 우리 민족의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부여와 관련되었다고 추정되는 왕통은 고구려 주몽, 백제의 온조, 신라의 김씨 왕통(내물이사금계) 등입니다. 다만, 부여 자체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좀 이질적인데, 순장 풍습이나 한나라와 손잡고 고구려를 공격하는 모습 등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여에 대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각각 다른 얘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 해부루 늙음 - 금와를 얻음 - 동부여로 이동/해모수 북부여 수립 - 금와 즉위/유하 만남 - 주몽 탈출
《삼국유사》
- 해모수 북부여 수립 - 부루 출생 - 부루 즉위 - 동부여로 이동 - 주몽이 북부여에서 졸본부여 수립 - 금와 즉위 - 대소 즉위 - 대소 사망(A.D. 22년)
여기서 공통적으로 발견 할 수 있는 요소는 세 가지입니다.
1. 원래 부여가 있었는데, 일부 세력이 이동하여 동부여를 수립함
2. 기존 부여는 다른 세력이 장악
3. 동부여 수립 후 고구려 건국
제 생각에 《삼국사기》의 기록은 고구려 건국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무리하게 왕통을 연결한 것으로 보이고, 《삼국유사》의 기록 중에서 북부여 자리에 졸본부여를 수립했다는 것은 고고학적 증거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를 감안하여 정리하면,
- 부여 수립 (B.C.2세기경, 제2송화강 유역) - 왕권 교체. 기존 왕통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부여 수립 (B.C.1세기경, 두만강 하류) - 이후 졸본부여/고구려 수립 (B.C.37년, 압록강 중류)
부여는 고고학적으로 포자연유형으로 일컫는데, 포자연유형은 서단산문화의 일종입니다. 그리고 서단산문화는 단군조선 문화인 쌍방문화와 동일 문화로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지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