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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및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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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평양지역에서 출토된 유적유물을 검토한 결과 기원전 나라인 서한시대 유적유물은 없고 기원후인 동한시대 유적유물만 있다.

2. 따라서 지금의 평양지역은 동한 광무제가 기원후48년에 만든 군사식민지였고 이는 고구려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후한의 계획의 산물이다.

3. 지금의 평양지역은 난하주위에 있던 낙랑국이 서한의 침략에 항거해 이동한 낙랑사람들이 만든 낙랑국이었다가 고구려 대무신왕에게 멸망당했고 동한의 군사식민지로 점령당했다가 미천왕때 다시 고구려가 재점령한 지역이다.

4. 동한의 침략으로 군사식민지가 된 평양지역은 난하동쪽에 있었던 낙랑군의 속현지역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평양이 서한 무제때 만들어짐 낙랑군이 있던 지역이라는 학계의 물적 근거는 하나도 없으며 소위 낙랑목간조차도 속현이 된 군사식민지임을 보여주는 증거가됩니다.


다음에는 낙랑목간과 임둔태수장 봉니를 소개하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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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흥무대왕님의 댓글

잘 봤습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1. -> 동의
2. -> 군사식민지라기 보다, 대동강 낙랑국 멸망 후 해당지역 잔여 세력이 후한 광무제와 손잡고 동맹을 맺음
    -> 근거: <후한서> 건무 20년(기원후 44년) - 동이 한국인이 무리를 이끌고 낙랑에 내부하기를 청했다
3. -> 위만조선 멸망(bc 108) -> 일부 세력이 대동강으로 이동하여 낙랑국 수립(bc 100년경) -> 대무신왕에게 멸망(ad 37년) -> 잔여세력이 후한과 동맹 (44년)-> 고구려에 흡수(1세기말)
4. -> 속현이라기 보다는 동맹이라고 봅니다. 요동 낙랑군은 대동강 세력과의 교섭 창구 (춘추필법 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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