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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후원분 최신 논문 소개 및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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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공부를 시작한 이래 꽤 많은 논문을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2010년 이전 논문은 잘 안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1. 오래된 논문은 최신 고고학 성과가 반영되지 않아 오류가 생긴다는 점, 2. 최신 논문에서는 기존의 연구사를 정리해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 대한 학계의 논점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번째 이유는 동호인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무위키를 시작점으로 삼지만, 나무위키는 아무래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빼어난 통찰력을 제공하며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빛을 발하는 논문도 있습니다. 또한 국내 고대사 연구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인지 제가 궁금한 분야에 대한 논문이 적어서 2010년 이전 논문을 참고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아래 논문도 유용한 논문이라고 생각되어 소개 드리고, 논문을 읽은 후 추가로 생겨나는 의문점을 나열해 볼까 합니다.


이문형. 2022. "호남지역 전방후원분의 피장자와 그 성격." 湖南考古學報 72 (-): 136-169.



이 논문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호남지역의 전방 후원분 분포 현황 (총13곳 15기, 위 그림 참고)

2. 기존 연구 동향 소개와 문헌 기록 검토

3. 전방후원분 피장자의 성격 추정


​1번 내용은 고고학적으로 전문적인 내용들이니 제 경우에는 빠르게 읽고 넘어가는 편입니다. 2번 내용은 지난 글에서 소개 드렸던 여러 가설에 대한 소개인데 각 설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해당 설이 제기된 논문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필독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3번 내용이 논문의 핵심인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추정하고 있습니다.



1. 전방후원분의 주요 특징

    a. 옹관고분의 핵심지역인 나주지역을 회피하고 외곽 수로 상의 요충지에 조영된 점 (아래 그림 참고)

    b. 한시적인 시기(웅진기 후반)에 단독으로 축조/분포되는 점

    c. 매장시설이 비연속적이면서도 통일성이 없는 점

    d. (백제계와 왜계)출토유물에 있서 계통의 다양성과 위계성이 차이를 보이는 점
2. 이러한 특징으로 볼때 재지세력을 전방후원분의 피장자로 볼 수 없음
3. 결론적으로 피장자는 영산강유역의 통제를 위해 백제에 의해 한시적·임시적으로 분사(分使)된 왜(군사)로 판단함. 그리고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피장자가 백제 관료체계에 편입되었다고 볼 수 없음


제가 이 논문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백제는 나주(羅州) 중심의 영산강 유역 재지세력이 혼란기를 틈타 주변지역과 연합하여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이며, 나주지역이 차지하는 경제력과 일본과의 외교를 위해서 백제 남방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백제는 왜 왕권과의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여 왜의 군사를 나주지역의 외곽 특히, 수로를 통한 교통로에 계획적으로 분산 배치하여 나주세력과 외부세력과의 연대 혹은 교섭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파악된다. ..."


​이상으로 논문을 간단히 살펴봤는데 더 자세한 사항은 논문을 직접 보시는 게 좋을 듯 하고, 제가 논문을 보고 난 후에 갖게된 몇가지 의문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5세기 후반은 기나이의 야마토정권은 아직 규슈지역도 정복하지 못한 상태인데, 멀리있는 백제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한 이유가 무엇인가?

2. 문주왕은 신라에서 군사 1만명을 동원하고, 동성왕은 신라와 혼인동맹까지 맺을 정도로 백제-신라의 친분이 깊은데, 영산강유역의 통제를 위해 더 멀리 있는 왜 세력을 이용한 이유가 무엇인가?
3. 백제-신라-야마토정권의 삼각동맹 가능성도 있는데, 5세기 내내 신라를 조직적으로 침략하는 신라본기의 왜인들은 누구인가?
4. 3~4세기 백제는 한강(적석총)- vs. 금강(주구토광묘) vs. 영산강(옹관묘) 세력으로 정치세력이 삼분 된 것으로 보이는데, 5세기 중반부터 지배적인 묘제가 되는 횡혈식석실분은 이 중 어느 형태가 발전된 것인가?
5. 마한은 금강유역 세력인가, 영산강유역 세력인가?


​갈 길이 머네요. 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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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울티마툴레님의 댓글

전방후원분의 역사와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선 bc1세기부터 ad 6세기 이전 한반도 중남부 역사의 충실한 복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분야에서 선구적 연구는 현재 김상교수뿐이죠.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오랫만이네요. ^^

김상 교수님이나 저나 핵심사항은 비슷한 방향인데, 세부적인 사항들은 좀 다르게 보고 있어요. 김상설 중 고고학 성과와 어긋나는 부분은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본 논문의 결론에는 교수님도 동의하실거라 봅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그리고 제가 아는 선구자는 다른 분입니다.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김성호, 1982

김상설은 이 분 가설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결과입니다.
교수님을 뵜을 때 확인 받은 부분이에요.

울티마툴레님의 댓글의 댓글

네 그책은 대학때 본 책이고 흥미진진합니다만 김성호설은 비류백제와 온조백제 이중설로서 온조백제는 한반도에 남고 비류백제가 일본으로 넘어갔다는걸로 기억합니다. 진왕제와 결부하여 논의를 전개한 것이 김상설의 독특한 점이죠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이미 읽으셨다니 잘 아시겠네요.

1. 한성백제(온조백제)는 한반도에 남고, 삼한백제(비류백제)는 일본으로 건너가 망명정부이자 정복왕조인 야마토정권을 세웠다.
-> 두 분의 주장이 동일합니다.

2. 진왕제는 김상설의 독특한 점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요즘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다시 읽고 있는데,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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