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료 분류
삼한이 백제와 신라로 성장하는 과정
컨텐츠 정보
- 1,025 조회
- 0 추천
- 0 비추천
-
목록
본문
기원전 4세기에 시작된 한이 백제와 신라로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고학적 문화를 중심으로 정리할 생각인데 아직 미싱링크가 많고 정치체들의 출자가 확인되지 않아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일단 아이디어 노트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새로운 걸 알게 되면 계속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b.c.5세기 후조선(점토대토기)의 일부 세력이 남하
- b.c.4세기 점토대토기문화인 세력 확대. 송국리/검단리유형과 통합. → 한韓의 탄생
- b.c.3세기후엽 삼각형점토대토기(자체 발전), 연식 철기(전파?), 만경강유역 목관묘(전파?) 등장
- b.c.1세기 영남해안가 지역 와질토기 등장 (자체 발전)
- 기원전후 마한지역에 분구묘 등장 → 경기지역에서 말갈 공격 시작
2세기 후반 경기지역에 서북한계 토광묘세력 등장 → 낙랑군 와해 시기에 넘어온 유민인가? 2세기중반에는 말갈의 공격이 신라로 방향 전환함 (백제가 신라를 지원하는 기록)
3세기초 경기지역에 분구묘세력 등장 → 이 분구묘 세력에게는 말갈이 치열하게 공격을 감행
- 3세기중반 경기지역에 적석총 세력 등장 → 이후 말갈 침공 중단. 고이왕계통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말갈(예)인지, 고구려 세력인지? 학계에서는 고구려계통으로 보는 의견이 있음 (참고. https://ggc.ggcf.kr/p/5beec5a58ba1f97bb60a2e5b)
몇가지 의문점과 확인이 필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한,진한,변한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언제 그런 차이점이 나타나는가? 송국리유형 vs. 검단리유형의 차이인가?
- 진국-진한의 출자에 대한 설화 검토
- 남한지역 고고학적 문화 중심지는 b.c.4~3세기경 충남/대전에서 a.d.1~2세기경 영남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3세기초 경기 지역 분구묘는 초고왕계통(해씨)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고고학적 문화의 연계성이 없음. 분구묘의 출자가 어딘지 중요함.
3세기중반 고이왕 등장한 계기는 무엇인가?
사로국은 언제 진한의 맹주로 성장했는가? → 이 부분은 관련 논문이 많은 듯 하니 천천히 확인하면 됩니다.
- 387년부터 다시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한 말갈은 어떤 세력인지? 이미 고구려의 기층세력이 된 평남황해도 지역의 예인 세력인지? 고구려와 말갈이 번갈아가며 백제와 충돌. 그 후 광개토왕의 백제/마한 원정 진행.
- 4세기말에 전북지역까지 백제문화권에 통합된 것으로 보이는데, 광개토왕의 원정은 백제 후방(금강유역)을 노린것으로 보임.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마한이 건재한 것인가?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略來韓穢. 백잔과 잔국의 차이는? 한과 예의 차이는?
참고하세요.
관련자료
-
링크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