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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갑인상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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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공부를 시작한 이래 과학(고고학)과 상식에 근거하여 여러 가설들을 평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난하 고조선 서변"설, "한사군 요동"설, "장수왕 평양 요동설" 등 재야와 학계 일부에서 주장되는 가설을 마음속에서 폐기하기도 했고, 더 나아가 통설로 여겨지는 진번재남설이 재귀논리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제기한 뇌피셜들도 지속적으로 이런 잣대로 검토하고 있고, 반증 정보가 입수되면 바로바로 수정해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 여러 논문을 읽는 도중에 "이주갑인상"이라는 가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는데, 일단 그 내용을 소개하고 제가 바라보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이웃님들의 의견 부탁 드립니다.



A. 이주갑인상이란?


- 일본서기 편찬자들이 히미코의 죽음(247/248년경)과 왜5왕의 등장(413년) 사이의 공백기 166년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공황후(히미코 대체역) 연대를 일부 내리고, 5세기 천황들의 연대를 약 120여년 정도 올려서 역사의 공백을 메웠다는 가설.


-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 "이주갑인상" 항목 참고. https://namu.wiki/w/%EC%9D%B4%EC%A3%BC%EA%B0%91%EC%9D%B8%EC%83%81



B. 문제점


- 역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외국의 자료 특히 백제의 자료를 가져다 임의로 연도를 조작해서 일본서기에 끼어넣음

- 일본서기 편찬자들의 고뇌는 이해됨. 그리고 이를 이주갑인상해서 해석하려는 일본 학자들의 고민도 이해되며 대체적으로 옳은 접근 방법이라 생각함


- 문제는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백제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우리 학계의 접근 방법이었음

- 특히 근초고왕의 기록 부재기간 (재위 3년~20년, 348년~365년)을 일본서기를 이용하여 메꾸려하다 보니 무리한 가설이 생겨남. 대표적으로 근초고왕 24년(369년) 마한 정복과 남방 평정설.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의 "근초고왕/생애" 항목 참고. https://namu.wiki/w/%EA%B7%BC%EC%B4%88%EA%B3%A0%EC%99%95/%EC%83%9D%EC%95%A0

- 삼국사기를 보면 근초고왕은 북방경략에 힘썼을 뿐 남쪽으로는 세력을 넓힌 기록이 없는데, 학계에서는 백제의 마한 정복을 근초고왕 대로 보고 있음

- 2000년대 들어 충청,전남 지역의 고고학 성과가 쌓임에 따라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369년 백제의 마한 정복은 통설처럼 인식되고 있음

- <일본서기> 의 일본 내부 기사와 시간대와 백제 기사는 철저히 시간대를 분리해서 정리해야 함



정리하면 일본 학자들이 자국 기록(일본서기)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만든 이주갑인상설이 우리나라에서는 자국 역사를 오해하게 만든 결과가 됐습니다.


제가 문제라고 생각한 자료 또는 논문들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가 몰랐던 마한, 임영진, 홀리데이북스, 2021

- 정태영. 2019. "중서부지역 주구토광묘의 전개양상과 성격." 국내석사학위논문, 목포대학교.

- 박장호. 2011. "原三國期 動物形帶鉤의 전개와 의미." 국내석사학위논문, 영남대학교 대학원.







첫번째 책은 제가 예전에 소개해 드린 책인데, 백제 영역 확대의 변곡점을 5개로 보고 있습니다. 250년, 300년, 370년, 475년, 530년. 이 중 250년과 300년은 대략적인 연도이므로 이해가 되고, 475년(장수왕 남정)과 530년(지방조직 정비)은 특정한 사건에 기반하였으니 이해가 됩니다. 

370년은 기준이 뭔지 이해가 잘 안됐었는데, 이제보니 이주갑이상에 따른 근초고왕의 마한 정복설을 기준으로 잡은 듯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와 세번째 논문들은 369년 근초고왕의 마한 정벌을 바탕으로 고고학 유물 분석 결과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두 논문뿐 아니라 많은 논문이 그랬겠지만, 우연히 제가 최근에 보는 논문이 이 논문들이라 예시로 들었습니다. (저자들께는 죄송하네요.)



근초고왕의 마한정복설(369년).


요즘 학계의 동향이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웃님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개인적으로 백제의 충남 내륙지역과 전북 서북지역으로 영역 확대는 396년 광개토왕의 남정에 따른 어부지리의 성격이 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준점은 369년이 아닌 396년이 방아쇠가 된 4세기말~5세기초라고 봅니다. 약 30년 차이니 고고학적으로 구별이 안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마형대구 관련 논문들을 보고 있는데, 흥미롭네요. 관련해서 조만간 발제글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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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흥무대왕님의 댓글

참고로... 제가 제목을 잘못 달았습니다.

이 글은 이주갑인상설 전체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근초고왕의 마한정벌설을 비판하고자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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