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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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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을 경계로 서쪽 지역을요서라 부르고 동쪽 지역을요동이라 불렀는데 요하를 경계로 딱 가른 것은 아니고 요동의 범위는이 일대를 차지한 세력들의 영역 변동에 따라랴오허 이서를 포괄하기도 했다.[2] 또 요하는 압록과 더불어 중국의 경계를 뜻하던 강을 부른 것으로 시대에 따라 역수, 유수, 대릉하 등이 요하로 불리었다는 학설이 있다. 고구려 시대에는 압록수라고도 불렸다.


발원지를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누자면 동북쪽으로는 동요하, 혼하, 태자하 등의 지류가 요동반도와 길림성 일대를 적시면서 흘러나오고[3] 서쪽으로는 대흥안령 산맥 너머에서 시라무렌강이, 북경 인근 연산산맥 일대에서는 노합하가 흘러나와 서요하를 이룬다.[4] 요동에 면한 강의 중하류에 이르면 요택(遼澤)이라는 늪지대를 형성하며 바다로 흘러들어간다.[5]


이렇듯 거대한 규모와 복잡한 지형 덕에 이 강을 장악한 세력은 만주와 동시에 몽골초원, 중원대륙까지 동시에 감제하며 영향력을 끼쳤다. 적대적인 중원 세력이 북경에서 요서회랑으로 빠져나오는 상황이 생기면 요하 상류와 요동에서의 견제를 동시에 받아야 했고 요서회랑을 빠져나오고도 요택이라는 늪지대에서 발목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6]


요하 하류 근교[7]석유가 나는지라 석유를 매개체로 한 중화학 공업도 상당히 발달되어있다. 물론 중국의 인구가 많기 때문에 요하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내수용이고, 환경오염도 꽤나 심각한 축에 든다.


중앙집권 왕조가 형성되기 이전에는홍산 문화가 발흥했다.[8] 학계에선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요서에서 요동과 한반도 북부로 세를 확장해나가면서 중심지를 조양에서 심양으로 옮겼고, 이후 연나라의 침공으로 중심지를 평양으로 이전하기 이전까지 랴오허 지방이 고조선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추정한다. 과거고구려 시절에도 고구려 서부의 주요한 하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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