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비파형동검/세형동검 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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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검토가 필요한 7개 항목을 정리했는데, 그 중 3번에 해당하는 항목이어서 제목에 이렇게 표기했습니다 (1,2번 항목은 지난 글 참고).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의 계통을 정리하고자 했는데, 어찌보면 간단한 정리였지만 생각할 게 많은 부분이기도 하네요.
비파형동검 문화는 요서의 십이대영자문화에서 기원전 9~8세기경에 출현합니다. 이후 비파형동검은 기원전 8~7세기경강상유형, 이도하자유형, 한반도유형으로 전파되어 각각의 지역 유형을 형성합니다. 이 중 이도하자유형은 서단산문화와 미송리문화의 일부 지역에서 십이대영자문화의 비파형동검을 받아들여 지역 유형으로 성립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원전 6~5세기경에 십이대영자문화의 직접적인 진출로 이도하자유형이 심양 정가와자유형으로 대체됩니다 (전조선 -> 후조선 교체).
재미있는 것은 각 유형에서 비파형동검이 갖는 성격인데, 동검의 성분비나 형태를 볼때 십이대영자문화에서는 실전 무기로 사용되었지만 그 외 유형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을 수장의 권위물 또는 위세품으로 수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현상을 개인적으로는 혼란의 요서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요동/한반도 지역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기원전 10~9세기경).
전국연의 성장과 더불어 요서지역은 문화접변으로 기원전 5세기경 비파형동검이 세형동검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지역은 또한 중원계 무기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후 요동과 한반도도 세형동검으로 변화됩니다. 이러한 변화도 비파형동검과 마찬가지로 요서->요동->한반도의 전파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전파가 완성된 제품을 전달하는 과정은 아니고,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전파 된 후 각 지역에서 자체 양식으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봐야합니다. 이 시기는 전투무기체계도 좀 더 정교하게 발전되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초 후조선-연 전쟁의 결과로 요서지역은 한국고대문화권에서 이탈하고 요동/한반도는 초기철기문화(연계 철기)가 수용되기 시작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청천강을 기준으로 남쪽 지역만 세형동검 문화권에 해당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 학계에서는 요서,요동 지역의 변형비파형동검 (또는 초기세형동검)도 세형동검의 범위에 포함시켜 분류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요령식 세형동검 vs. 한국식 세형동검. 더 나누면 위 그림과 같이 분류할 수 있고, 여기서 더 세분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오강원 등)
이번 검토를 진행하며 아래 사항들이 좀 더 명확해 졌으니 참고하세요.
. 고목효과, 해양 리저버 효과, 2400년의 문제 등으로 인해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에는 오차가 수백년까지 발생 할 수 있음.
. 후조선-연 전쟁(연 진개 침공) 년도는 b.c.282~280년 사이 어딘가... b.c.280년경으로 표기하면 좋을 듯. 단 후조선-연 전쟁이 문화 전파를 촉발한 것은 아니고 점토대토기나 세형동검은 그 전 시기에 전파가 시작되었음
. 한국고대문화권의 철기는 기원전 3~2세기 등장했는데, 문화접변으로 인해 연식철기는 후조선 문화, 한식철기는 위만조선의 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함
. 점토대토기 1단계는 요중지역에서, 3단계(세형동검 등장기)는 요서지역에서 파급. 즉 점토대토기=세형동검은 아니고, 두 물질문화를 전파한 주체는 서로 다르다고 보여짐
. 송국리문화, 검단리문화, 점토대토기문화의 하한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통설처럼 송국리문화가 일순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신구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 삼각형점토대토기나 와질토기는 영남지역에서 자체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