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분류

지금은 서퍼들의 천국이된 양양에서의 추억

컨텐츠 정보

본문

지금은 서퍼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양양 죽도해수욕장.


지금은 작고하신 선친과의 마지막 여행지였지요. 


고사리같은 손자의 손을 잡고 노을지는 해변에서 


인자하신 모습으로 정담을 나누시던 그 해의 여름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요. 





9인승 갤로퍼에 아버님 어머님 마누라와 우리아이 셋. 조카 둘을 태우고 


양양의 바닷가에서 추억을 남기시고 뭐 그리 빨리 우리곁을 떠나셔야 했는지....






지금도 우리 아들놈은 그 해변을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 여기고있는 추억의 장소이지요. 


그때도 가끔씩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었지만 지금 처럼 그리 많지는 않았었는데 


요즘의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죽도해수욕장은 서퍼들의 천국이 되었더군요. 






그렇게 뜨겁던 여름이 가고 추석을 쇠고  음력 9월 어느 토요일에 내 아내이자 아버님의 며느리 생일을 보내고 


준비해간 샤부샤부를 아주 맛있게 드셨고 일요일 저녁에 내려 왔어요.


월요일 새벽에 도란 도란 소리가 들려서 잠결에 일어나 보니 아들놈이 지 할아버지하고 통화를 하더군요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오전 5시 쯤....



당시 5살 이었던 아들놈이 제 핸드폰으로 본가에 전화를 걸었고 


할아버지와의 정담에 웃음 꽃이 피었었죠....






그리고 그날 전 출근을 해서 출장을 나와있었고 


오전 일과를 보던중 울리는 벨소리. 


왠지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때는 발신자 번호가 뜨지 않던 시절이였고 


수화기 너머의 떨리는 아내의 음성이 ...


"아버님이 쓰러지셨데... 한양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셨데... 빨리와요."






그리고 조퇴를 하곤 집으로 차를 몰고 가니 애 엄마와 애들이 나와있었고 


뭔가 조급한 마음에 그대로 내달려 올라가는 중에 숨이 턱하고 막혀서 


죽전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출발 하려는데 


아내가 이러더군요. 


"아버님 벌써 돌아가셨데....."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아니 꿈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운전을 해서 도착하니 


아직 상주가 오질 않아서 응급실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곤 아버님을 마주했는데....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직 따스한 온기가 남았었고 금방이라도 아버지 라고 부르면 인자하신 눈을 뜨고 바라볼것만 같았죠.


눈물도 나지 않더군요 




아버지 하고 부르며 아버님을 일으켜 세우니 반쯤 일으켜진 아버님 코에서 피가 주르륵....


그리고 강하게 붙잡으시던 두 팔이 힘없이 떨어지고....


그때서야 실감이 나고  쏟아지는 눈물 콧물....


미칠거 같았습니다. 아니 미쳤었다고 봐야겠지요....


제 정신일 수가 없었지요....





아침 식사를 드시고 동네 의원에 약타러 가셔선 수십년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러 가실 줄이야.


장례를 치루고 선산에 뫼시고 오는 길에서부터 한동안은 정말로 많은 회한이 남더군요



그래서 제겐 더없이 소중했던 장소가, 추억의 장소가 바로 그 마지막 여름 아버님과의 마지막 여행이었던 


양양의 죽도해수욕장 입니다. 






그 후론 해마다 찾아가던 곳이였고 그때의 아버님과의 마지막 추억을 회상하던 장소. 


그러나 한 5-6년간은 못가봤지요 


제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제 몸도 간수 못하고 차도 팔아버려서 


그저 아련하게 그리운 곳이 되어버렸죠. 






오늘 지인과의 톡으로 대화도중에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막 더 그리워지는게 마음이 심란하네요 


몸도 장염증세로 며칠동안 좍좍 쏟아내고 힘도 없는 상태에서 


더 그리워 지는 날 입니다. 



아버님 보고싶습니다. 


그립고 그립습니다. 




평안하게 지내고 계신지요?


어머님께선 아프시지만 잘 지내고, 아니 잘 견뎌내고 계십니다. 



어머님 가시게되면 


저도 곧 찾아뵙겠습니다. 



사랑해요... 사랑했습니다 


제 정신적인 지주이자 롤모델이셨던 아버님 


부디 다시 만날 때까지 그곳에서 잘계세요. 






관련자료

  • 서명
    날으는 황웅
댓글 2

황웅님의 댓글의 댓글

나이도 먹어가고 몸도 아프고...
원래 아프고 서러울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부모님이죠.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나셔서 물론 혜택(?)도 많이 받으셨지만
그 덕에 동생들( 2남 3녀의 믿이셨음)은 물론이고 사촌들 (2남 3녀)도 모두
혼전까지 다 거두고 시집장가 다 보내셨지요.
거기에 문중의 일없던 일가들도 거두었었고요.
고생 참 많이 하다가셨지요
촌에서 서울의 고등학교 유학을 할만큼의 천재셨고요
아버님께서 사업을 하셨어서 조금이라도 연이 닿는 사람들은 죄다 신셀 지고했었답니다.
무엇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하신 분이셨어요.
제가 살면서 울아버님 비방을 들어본적이 없답니다.
아 물론 제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확인을 했지요.
다들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들을 했었지요
주저리 7 / 1 페이지
번호
제목
이름
주저리 7 / 1 페이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