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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스런 우리말 사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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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연수원 강의자료중) ‘아름답다’의 어원은 ‘성교(쎅스)를 잘할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은, 말이 시작될 무렵에는 어떤뜻으로 쓰여졌다가 지금과 같이 진화 되었을까? 


오늘은 ‘아름답다' 라는 말에대해 역시 ㄱ ㄴ ㄷ...ㅎ의 뜻을 밝히는책 [천부인 ㅇ ㅁ ㅿ] 에서 알아본다.




국내의 언어학자들은 이 ‘아름답다’의 ‘아름’을 ‘아롬(私.나)’, ‘안음(抱)’ ‘알음 (知)’ 로 의견이 분분한데 


우선 나(私)를 주장하는 서 모 전 교수는 ‘답다’는 명사 뒤에 붙는 접미사로 명사를 형용사로 전이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음으로 


아름은 명사이어야 하는데 알다(知)나 안다(抱)는 동사이며 알(知), 또는 안(抱)에서 ‘음’ 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알음’이 되는 전성명사에 ‘답다’ 라는 접미사가 다시 붙어 형용사가 된 예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답다’는 ‘학생답다’, ‘소녀답다’, ‘여자답다’ 와같이 명사 뒤에 붙어야지 ‘졸음답다’, ‘웃음답다’, ‘울음답다’ 하는 식으로


 전성명사 뒤에 ‘답다’가 붙는 조어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은 나(私)이며 그래서 ‘아름답다’는 결국 ‘나답다’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세상사람 중 다 제 잘 란 맛에 살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이 추한 모습과 고약한 성격을 가졌어도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나 답다’ 라는 의견은 글쓴이는 부정한다.


고대 사회에서, 특히 우리 고대 선조는 ‘나’ 라는 의미가 없었거나 있었어도 아주 약하게 또는 ‘나’와 ‘너’가 혼용되거나 


또는 ‘나’의 의미는 부정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지금도 동물이나 어린 아기 또는 문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자연생명대로 살아가는 소위 오지의 미개인들한테는 


‘나’가 없다 그저 본능대로 자기 입에 먹을 것을 집어넣을 뿐이며 그들에게 있는 것은 ‘나’ 대신 ‘우리’ 뿐이다.



즉 나의 본질은 ‘우리’이고 ‘나’란 벌이나 개미처럼 ‘우리’라는 생명체의 세포 하나하나가 공간적으로 확산 된데 불과한 것이며 


이 ‘우리’에서 ‘나’ 가 생긴 것은 인류의 지혜가 발달하면서부터 인데 이 ‘나’가 생김으로 필요 없고 한없는 욕심과 질투와 전쟁이 생겨났음으로 


이 ‘나’는 ‘나뿐’ 이라는 지혜가 곧 창세기에서 말하는 선악과 열매로도 본다.






우리말에서는 ‘나’가 매우 부정적이다. 


이는 예를 들면 우리말에는 ‘악(惡)’ 이 라는 단어가 없는 대신에 ‘나뿐’ 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을 대신 한다. 


즉 ‘나뿐 만을 아는 자’ 를 ‘나뿐 넘’ 이라고 한다. 


이것은 바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본 것이고 


나 뿐만을 아는 이기적인 존재를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세계인이 배워야할, 진정으로 전쟁을 없애고 세계 평화를 이를 수 있는 우리말의 철학이고 교훈이다.



그러므로 소위 문명인이라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현대인의 의식 같으면 ‘아름답다’를 ‘나 같다’ 는 해석이 그럴듯할지 몰라도 


고대 우리 선조들은 절대로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다른 학자는 ‘안음’(抱)를 주장한다. 


그 이유는 안음이라는 안음(抱) 동사의 명사형에 ‘답다’가 붙어 형용사가 되는 것은 안음은 본시 ‘안다(抱)’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는 명사형이 아니고 파생어이기 때문에 ‘안’과 ‘으’와 ‘ㅁ’이 붙어 완전 자립명사로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끌어안음과 같다고 말 할 수 있는데 어린아이를 끌어안건 


남녀가 끌어안건 안는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학자의 견해에는 큰 이의는 없다. 그러나 이 안음은 서로가 한 몸이 되는 자타일체(自他一切)의 켜 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최소한 말이 생성하려면 강력한 자극이 있는 행위이어야만 한다. 


즉 적당히 한 아름 끌어안는 행위로는 말이 성립 할 수 없다는 것이 글쓴이의 의견이다.



그러므로 ‘아름’은 ‘아우름, ’어우름‘ 인 교(交)에서 나온 말이어야 하고 이 교 도 보통 교가 아니라 성교(性交) 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름답다’는 ‘성교답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먼저 학자의 말대로 조어 법상 문제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반만년 전 고대 사회에서 지금같이 조어법대로 우리말이 형성될 리도 없겠거니와 


동사가 어떤 경우에 파생어가 되어 명사로도 될 수가 있다고 본다. 


즉 ‘답다’는 ‘학생답다’, ‘소녀답다’ 와 같이 명사 뒤에 붙어야지 


‘졸음답다’, ‘웃음답다’ 하는 식으로 전성명사 뒤에 ‘답다’가 붙는 조어법은 그 예가 없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냉정한 인간을 ‘얼음답다’ 라고 해도 조어법상 말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얼음’은 실은 물의 ‘어우름’ 으로 엄연한 동사이지만 


어느새 어우름 > 어름이라는 명사가 되어 ‘답다’를 붙여도 이상 할 게 없다는 말이다. 


또 ‘어른답다’ 가 있는데 이 ‘어른’ 이란 무엇인가? 이는 ‘얼루다’, ‘얼룬다’의 동사 ‘얼룬’이 명사 ‘어른’으로 변한 말이다.






이상으로 볼 때 동사였던 ‘어울어짐’ > ‘어울음’ 이 ‘얼음’ 이라는 명사가 되듯 


‘아울어짐’ > ‘아우름’이라는 동사가 어느새 ‘아우름’ > ‘아름’ 이라는 명사가 되어 


그 뒤에 ‘답다’를 붙여도 전혀 이상 할게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름’과 ‘아름’은 그 말이 다르다고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먼저 말했듯이 고대에서 우리 모음은 감둥이, 검둥이 등에서 보듯 아래아점만 썼음으로 ㅏ ㅓ ㅗ ㅜ 가 혼용된 결과라고 본다. 


그 증거가 바로 화석처럼 남아있는 정선의 ‘아우라지’ 이고 


이 아우라지는 두 개의 물줄기가 하나로 아우러져(어울어져) 붙은 이름, 즉 두 줄기의 물이 성교를 하듯 아울어져 있다는 말에서 나온 지명이다.



이를 5 천년 전으로 돌아가 우리 조상이 말을 만들때 그림글씨를 중국인들이 美자를 만든 글자를 보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인용,






여기서 금문은 모두 두 사람이지만 결국 팔 다리 아래 다리는 하나로 엉킨 그림이 美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물이 엉킨것을 ‘어름’(氷)이라 해도 좋고 ‘아름’ (美)이라 해도 그 뿌리가 같은 말이며 


따라서 아름답다를 ‘아우름 답다’. 즉 성교하는 것 같다고 해석하는데 


이것을 좀더 쉽게 요즘말로 한다면 아름다운다운 여자는 쎅시하게 생긴 여자이고 


쎅시한 여자는 쎅스를 잘할 것임으로 아름답다는 결국 ‘쎅스를 잘할것 같다’고 한다면 여성들 한테 매 맞을 소리 인가?




그러나 이 땅덩이가 만들어진 목적은 생명들이 번식 하라고 만들어진것, 


이 생명이 태어나는것은 성장하여 다시 생명을 낳으려고 짝짓기를 하려는것, 


짝짓기가 끝나 더이상 새끼를 낳지 못하게 되면 늙고 병들어 땅으로 돌아가는것이 


모든 생명의 순환이고 사람도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 짝짓기인 어울림= 아룰림 즉 아름다움은 


이 땅 위의 생명들의 최대의 목표라고 볼때 '아름답다'를 '성교하는것 같다' 한들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약간 빗나간 이야기지만 요즘 ‘사생활(私生活)을 타인이 침해 할 수 없다’는 말은 


정사 하는데 는 개(犬)등 짐승들은 치열한 암컷 싸움을 하다가도 일단 한 놈이 교접에 성공하면 


그 교접에 성공한 수놈은 몸을 자유로 움직일 수가 없어 다른 개의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일 것인데 


만약 인간 같으면 연적이었던 놈이 움직일 수 없다면 엄청난 해를 가할 수 있을 터인데 


개들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이 그저 구경만 하고 있으니 이점 인간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따라서 타인의 정사, 즉 타인의 사생활을 관여 할 수 없다는 말은 옳은 말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아름’에서도 하늘의 상징인 ‘ㅇ’을 쓰는 것은 ‘아우름’, 


아롬은 결국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알’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며 


‘얼’이 되는 어우름 역시 다음에서 설명하는 생명의 시원 ‘얼’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고 알과 얼이 유사한다는 것 때문이다.


다음 밤송이가 익어서 벌어지는 것이 ‘아람 벌어진다. 인데 이 역시 네 쪽으로 어우러진(아울 어진) 어름이(아름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출처 : 천부경.net



https://hangeul.or.kr/오순도순한마당/3336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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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으는 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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