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웅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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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최종 정리를 할까 합니다.
빙하기인 플라이스토세(258만년전~1만년전)가 끝나면서 지구는 온난한 홀로세로 들어섭니다. 덕분에 인류의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는데, 활동 반경은 넓어지고 작물재배도 가능해지기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신석기시대를 농업혁명 시대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라고 늘 기후가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위의 두 그림 중 첫번째 그림은 1만2천년간 기후 변화를, 두번째 그림은 8천년간의 유빙 면적을 보여줍니다.
대략 8번 정도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오는 시기가 있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8.2-kiloyear event 와 4.2-kiloyear event 입니다. 이 중 4.2-kiloyear event 로 이집트 고왕국, 아카딘 제국, 모헨조다르가 붕괴하고 중국에는 거대한 홍수가 닥쳤습니다. 우리와 관련있는 요서/요동지역에는 가뭄과 먼지폭풍이 불어닥쳤구요.
[Global distribution of the 4.2 kiloyear event. The hatched areas were affected by wet conditions or flooding, and the dotted areas by drought or dust storms.]
4천2백년전...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이 시기는 환웅이 환인을 떠나 태백산으로 온 시기이기도 하고, 중국 하나라의 건국자인 우가 황하의 홍수를 다스린 전설이 있는 시기입니다.
요약하면, 4.2-kiloyear event 전후 요서지역에 번성하던 소하연문화에서 일군의 세력(환웅)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북한 지역의 토착세력과 만나 백두산 인근(신시/평양성)에 조선을 세웠고, 2~3백여년 후 백두산 화산 활동의 영향으로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여 요동(아사달)에 정착했다는 것이 단군조선의 초기 역사에 대한 고고학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사점을 정리해 보면,
1. 환웅이 동쪽으로 온 까닭은 알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요서지역에 식량이 부족해진 때문인지, 아니면 '서자'라고 표현된 본인의 요서지역 내 지위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동경했기 때문인지... 중요한 것은 환웅과 웅녀(곰 토템 세력)의 만남으로 한민족의 뿌리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만남과 뒤섞임이 우리의 정체성이 아닐런지?
2. 환웅의 홍익인간, 재세이화 뿐만 아니라, 우임금의 치수를 통한 백성들의 구제 등. 신석기시대만 하더라도 동아시아는 약탈과 살육의 전쟁 문화가 아니라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살리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하는 문화였다는 점입니다. (하나라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전설이 전하는 메시지만 보시면 좋겠네요...)
3. 세계 여러지역의 문명을 붕괴시킨 4천2백년전 사건이 우리에겐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됐네요.
이상으로 기원전 2천년까지의 상황은 정리하겠습니다. 이 이상의 얘기는 요동,연해주,북한지역의 신석기시대 고고학 연구가 더 진행되길 바랄뿐입니다.
다음 글에선 원사시대(단군조선,준왕조선)의 고고학 성과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