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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신덕 장고분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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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분이 낯선 분들을 위해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을 정리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장고분 또는 전방후원분이라 불리는 무덤은 앞은 사다리꼴의 네모형, 뒷부분은 원형으로 열쇠 구멍 모양을 하고 있는 무덤입니다. 우리 악기 장고를 닮았다고 장고분이라고도 부르죠. 이 무덤은 3~7세기 고대 일본의 무덤 양식이고, 특히 5세기초에는 아래와 같은 거대 무덤이 기내 지역에 떡~하니 나타납니다.



기존에는 이 무덤이 일본에서만 발견이 되었으나 80년대 후반부터 한반도 특히 호남 지역에서 동일 양식이 발견되며, 한일사학계의 거대한 떡밥이 됩니다. 즉, 호남의 장고분을 일본 학계는 임나일본부설(4~6세기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이용하고 있고, 한국 학계에서는 왜인설, 재지수장설 등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소극적인 반격에 불과합니다(부흥 카페에서도 난감해 하는 분위기... ㅋ).


그리고 이전 게시글의 대상인 함평 신덕 장고분은 80년대 중반 발굴이 시작되었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았다는 오해와 함께, 한국정부/학계가 역사적 사실을 덮고 은폐하려는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 무덤입니다. 일단 국내 학계의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는 부분은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연구의 방향은 잘못 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분부터가 김상님의 탁월한 시각인데,

기내 지역의 장고분(위 사진)은 영산강 유역 세력의 웅진백제가 396년에 기내로 망명하여 망명정부 수립 후 정복자의 입장에서 거대한 고분을 세운 것으로, 함평 장고분은 477년 한성백제 멸망 후 기내의 웅략천황(곤지)과 그 세력이 웅진으로 건너와 벌이던 권력투쟁 과정에서 만들어진 고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한반도와 일본의 장고분은 영산강 유역 세력의 백제계가 만든 고분입니다.


김상설에서 설명이 미흡한 부분은 3세기 일본의 장고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인데, 이 부분은 한반도 동부의 원형분과 한반도 남서부의 방형주구묘가 일본지역에서 통합되어 발전된 형태로 보는 견해도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웅진백제와 한성백제 등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신분은 제가 전에 올린 "지도로 보는 삼한사의 재조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함평 신덕 장고분의 의의는 한일 관계에 대한 김상설의 옳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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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뚝배기님의 댓글

참잘했어요라고 찍어주는 도장 모양인데요
참도장분..이라고 하는게 타당한줄 아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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