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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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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늘 제 머리속에서 저를 괴롭히는 질문입니다. 일개 동호인에 불과한 제가 어떤 가설을 세우고 학자들의 논문을 끌어다가 맞추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는 생각, 그냥 속 편하게 소위 통설이라 불리는 교과서적인 내용만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책과 자료를 보다보면 샘솟듯이 솟아나는 우리 고대사에 대한 궁금증. 고고학과 문헌사학간의 불일치.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서사"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기 때문에, 단편적인 유물들과 문헌 기록들이 어떤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지 <가설 (또는 모델)>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동호인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런데 우연히 제가 가진 생각과 동일한 의견을 만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이희준. (2007). 신라고고학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1부 - I장 서설 - 2.고고학과 문헌사학의 접목


"... 고고학 자료는 문헌 사료와 성격이 아주 다르므로 처음부터 문헌사학과는 따로 고고학적 방식에 의해 시공의 체계를 정립하고 그에 입각하여 귀납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해석해서 최종적으로 문헌사 연구 성과와 접목해 나가야 한다는 견해가 제안될 법하며 실제로 그런 접근이 일반적인 듯하다. 이와 같은 방식은 일견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상으로는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다. 물론 시공의 체계 수립까지는 순전한 고고학적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에 입각한 역사적 해석 또한 귀납적이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그러한 귀납적 접근 방식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자료가 "충분히" 집적되기까지 거의 무한정 기다려야 할 것이다. 설령 어느 증도 충분한 자료가 모여서 귀납적 연구가 가능하다 해도 그 결과는 흔히 보듯이 유물·유구의 변천사와 같은 것이 될 터이어서 그것을 귀납적으로 취합한다고 해서 곧바로 역사성을 띤 해석이 도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주로 정치·사회 측면에 중점을 두는 문헌사의 연구 성과와 접점을 찾기란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 그래서 귀납적 접근만으로는 과거에 관한 복원을 제대로 이루어내기가 어렵다. 특히 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못한 시기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 고고학 자료가 원래 확률적 성격을 띤 이상 그 의미는 대세론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므로, 같은 시기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문헌사에서 대세로 밝혀진 역사상은 고고학적 해석에 일정한 바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헌 사료의 특정 역사 사건을 고고학 자료의 연대 결정에 결부하는 식의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 하지만 그보다는 원래 그림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관한 희미하나마 귀중한 지침을 외부의 어떤 정보원으로부터, 이 경우는 문헌사학으로부부터 얻어서 그 조각들의 원래 자리를 대략 정하고 그것을 근거로 삼아 빠져 버린 부분을 복원하는 쪽이 훨씬 합리적인 접근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모델 이용의 목적은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다소 다른 두 분야의 자료를 융합할 수 있도록 해석 틀을 구성하고 그로써 해당 시기의 고고학적 현상을 설명해내려는 데 있다. ...


주지하듯이 고고학 자료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의 고고학자가 말을 시켜야 하는 것인데 그 방법이 바로 이처럼 모델을 이용하는 길이다. ... 구체적으로 4, 5세기 영남 지방의 예를 들어 말하면 3세기대까지의 사정과 6세기대의 사정을 전하는 문헌 사료로부터 어느 정도 파악되는 앞뒤 두 시기의 양상을 근거로 그 사이를 잇는 과도적 양태를 보일 것이라 예기하고 고고학 자료를 해석하는 데 참고한다면 이는 결코 틀에 끼워 맞추기라 할 수 없다. ..."



위 내용이 제가 생각하는 부분을 잘 짚어주고 있는데, 문헌사학과 고고학은 다르다는 단순한 사실을 뛰어넘어 두 분야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바라볼 것인지 하는 데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사건 기록들은 오류나 오차가 있겠지만 문헌사학에서 보여주는 큰 흐름을 고고학과 접목시키는 것이 올바른 접근방식이라는 뜻이겠죠.


결론적으로 문헌사학과 고고학을 융합해서 어떻게든 합리적인 <모델>을 구성해 내는 것이 중요한 연구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류나 비판이 두려워 시도조차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설령 지금 단계 자료의 한계로 훗날 그것이 잘못된 모델임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말이죠.


감사합니다.



* 참고문헌

- 이희준. (2007). 신라고고학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 이희준. (2017). 대가야고고학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사족.

- 제가 책을 오독한 것일 수도 있으니, 회원님들께서 필히 참고문헌을 직접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위 책들 덕분에 삼국시대의 빈칸 특히 진변한이 신라와 가야로 전환하는 순간을 메꿀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항들을 반영하여 제 기존 글 "지도로 본 고대사 3" 도 조만간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 마한이 백제로 전환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아직 위 참고문헌의 책들 정도로 통찰력 있는 책이나 논문을 못 만났네요.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 드립니다.
- 필자는 고고학을 <선사고고학>과 <역사고고학>으로 나누던데, 제가 만든 가설은 <신화고고학> 정도로 봐야할까요?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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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역적모의님의 댓글

역사를 연구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제 삼자들이 역사를 연구할 때 교차 검증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사에 A라는 사건이 있다면, 동시대 주변국에서 A 사건을 말한 것이 있는지 파악해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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