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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본기 가야, 백제본기 왜(倭)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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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본기 왜(倭)에 이어 신라본기의 가야와 백제본기의 왜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신라본기에는 총 19건의 가야 관련 기사가 있습니다.


제일 첫 기록은 시조 관련 우상화 기록이므로 무시합니다.


기록의 대상은 크게 4개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변한, 가야/가야인, 금관국, 가라. 이 중 교전 기록이 있는 것은 가야/가야인 뿐입니다. 뇌피셜로 추정해 본다면 변한은 가야 성립 이전의 낙동강 이서 지역, 가야/가야인은 대가야, 금관국은 금관가야, 가라는 아라가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33년~481년 간의 약 250년의 기록 공백이 있는데, 그 앞 시기는 교전 기록이 많고, 그 후 시기는 모두 친교의 기록입니다.


교전기록이 모두 봄이나 가을인걸로 봐서 가야는 육로로 공격한 세력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인데, 우리는 가야가 남해안에 걸쳐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해로로는 공격을 안 했을까요? 혹시 남해안 연안 지역은 가야의 세력이 미치지 못한 걸까요? 일단 기억해 두는 게 좋겠습니다.




기록을 도식화하면 위와 같습니다. a시기는 신라와 가야간에 교전이 많았던 시기이고, b시기는 친교의 시기, c시기는 공백기, d시기는 친교 및 멸망의 시기입니다.


209년 포상팔국의 난이 있은 후 24년 뒤에 왕자를 볼모로 보내는 애처로운 기록을 하나 남기고 가야는 사라집니다. 가야는 포상8국 또는 포상8국의 배후 세력에게 병합된 걸까요?


문제는 고고학 증거는 가야가 그 시기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보여줍니다.

그런데 잠깐. 고고학적으로 금관가야는 3세기 중반에 성립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금관국에 대해서 102년과 532년 2개의 기록만 남길 뿐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가 고고학적으로 금관가야라고 생각한 정치체는 금관국이 아닌 다른 세력일까요? 이것도 일단 기억해 두겠습니다.


위 그림만으로는 더이상 의미있는 분석이 불가능하니 다른 측면을 보겠습니다.




이건 신라본기에 나오는 가야와 왜의 기록을 통합한 그림입니다.


200년 전후로 신라가 가야와 친교를 맺은 후에 왜의 공격이 거세집니다. 그리고 475년 장수왕의 남정 이후로 가야가 다시 기록에 등장하네요. 이 왜가 가야를 병합한 후에 신라를 공격하고, 장수왕의 공격에 타격을 입어 세력이 약해진 이후로 가야가 다시 부활한 것일까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죠. 3~4세기 백제는 3개의 세력이 있습니다. 한강세력(한성백제), 금강세력, 영진강세력.


광개토왕의 남정으로 타격을 입은 세력은 한성백제과 금강세력입니다. 만일 신라본기의 왜가 금강세력이었다면 가야는 광개토왕의 남정 이후에 부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광개토왕의 남정이 아니라 장수왕의 남정 이후에 가야가 부활한 것으로 본다면 장수왕 남정으로 타격을 입은 세력은 한강세력이고 그들이 궤멸적 타격을 입은 후 금강지역으로 이동했죠. 이 세력을 웅진백제라 칭하면, 이 웅진백제는 영산강세력을 통제하려 했고 (결국 동성왕의 무진주 무력시위 이후 성공) 신라와는 동맹입니다. 즉, 가야를 병합한 세력은 영산강세력으로 보이고, 금강세력은 영산강세력의 가야 병합을 용납했고 웅진백제는 영산강세력의 가야 병합을 불허한 셈입니다. 따라서 신라본기의 왜는 영산강세력으로 추정합니다.


​뇌피셜이지만 일단 작은 가능성으로 열어두겠습니다.



다음은 백제본기에 나타난 왜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백제본기의 왜는 친교의 대상이며, 주로 여름에 오가는 걸로 봐서 해로로 다니는 지역입니다. 이 왜는 397년에 갑작스레 등장하는데 등장하자마자 백제와 수교를 하고 태자를 볼모로 데려갑니다. 읭?


그리고 428년~608년의 180년간 기록에 안나오는 걸로 봐서는 백제와 왜 간에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나 봅니다. 고고학적으로는 5세기후반~6세기초반에 교류가 있다고 나오는데 말이죠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


제반사항을 고려할 때, 백제본기의 왜는 야마토정권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추가로 탐라에 대한 2개의 기사를 올려놨는데, 사신이 여름에 오는 걸로 봐서 탐라국은 해로로만 통할 수 있다고 보여지니 제주도가 맞습니다. 498년 동성왕의 탐라 정벌은 가을에 일어난 걸로 봐서 역시 탐라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무진주에 대한 협박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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