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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를 읽을때 주의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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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우리가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접근할 때 보는 가장 기본적인 문헌이지만, 몇 가지 주의 할 점이 있습니다.

먼저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과 그 스탭 10명)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보여집니다. 모르는 건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기록하여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원칙을 고수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사관이 마땅히 지켜야 할 자세입니다. 다만 <삼국사기>의 가장 큰 소스인 <구삼국사> 자체가 여러 한계를 가진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여 <삼국사기>를 읽을 때 주의할 점과 의문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동시대에 존재하는 다른 국가들 (마한,진한,변한,가야,옥저,동예,부여,낙랑국,대방국 등)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삼국시대 중 약 절반의 역사가 사라졌다고 봐야겠네요.

2. 각 왕통의 시조에 대한 설화적 접근이 보여집니다. 신라의 혁거세거서간(박씨), 탈해이사금(석씨), 미추이사금(김씨), 고구려의 동명성왕(해씨), 태조대왕(고씨), 백제의 온조왕(해씨), 초고왕(?), 고이왕(우씨) 등은 설화적인 요소가 들어있거나 지나치게 긴 집권기간 등으로 인해 다른 왕의 기록이 합쳐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신화적인 요소는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주목하는 것이 현명한 접근 방식으로 보입니다.

3. 백제와 신라는 삼한의 소국으로 시작했으니 초기 기록은 마한,진한,변한 중 다른 나라 왕의 기록을 엎어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백제는 다루왕,기루왕,개루왕이 그렇고, 신라는 남해차차웅, 탈해이사금이 그렇습니다.

4. <삼국지>에는 "진역(秦役)을 피해 온 진한(辰韓)의 노인들"로 표현된 출자가 <삼국사기>에는 "이에 앞서 조선의 유민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누어 살면서 6촌을 이루고 있었는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출자와 이동 경로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5. 고구려 동명성왕의 건국(b.c.37년) 전에 약 200년 정도의 고구려사회가 존재했는데, 고구려의 시작을 동명성왕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6. 고구려본기,백제본기,신라본기에 나타나는 '말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저는 말갈=낙랑=예인이자 동예와 대비하여 '서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고고학적으로 검증이 필요한 가설입니다.

7. 신라본기에 나타나는 '왜'는 어떤 정치체였을까요? 우리가 일본의 고대 이름으로 알고 있는 왜와 동일한 단어를 썼지만, 그 행태를 보면 일본열도의 정치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8. 고구려본기의 태조대왕 70년(122년)에 고구려와 함께 요동을 공략한 '마한'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대동강유역을 가로질러 군사작전을 행했다면, 도대체 낙랑은 무슨 조직이었을까요?

이상의 내용은 공부를 하며 지속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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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7

로또님의 댓글

고대의 '왜'와 예맥의 '예'는 같은 음/뜻 입니다.
그래서 '왜'라는 것은 실제로 '예'를 가리킵니다.
나중에 한반도 '예'의 일부가 일본에 건너가면서 '왜'로 그 명칭이 정리됩니다.
그 전에 한반도/대륙에서는 '예'가 '왜'로 기록되기도 하였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한반도에서 예가 분포한 시공간이 궁금하군요. 송국리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를 이룩한 시기인지? 그 후의 일이라면 예가 아니라 '한'이 넘어간거 아닐까요?

그리고 신라를 침공한 왜는 주로 남쪽이나 동쪽 바다에서 왔는데, 동시기 예(말갈)의 상대적 위치는 북쪽이나 서쪽이 아닌지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생각을 정리하고 댓글을 다시 올립니다.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전파된 고고학적 문화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송국리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입니다.
송국리문화는 중국 문헌에 포착되지 않아서 이름을 얻지 못했고, 점토대토기문화는 '한'으로 불립니다.

'예'라고 불리는 집단은 팽이형토기문화인 또는 그 후예로 보여지는데, 이 문화는 일본열도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a.d.2~4세기에 신라를 침공한 왜는 주로 신라의 남쪽이나 동쪽 바다에서 나타나는데, 동시기 예(말갈)의 상대적 위치는 북쪽입니다.

재야연구자 김상은 이 '왜'를 가야, 그 중에서도 부산지역에 위치한 임나가야로 보고 있습니다. 저도 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고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로또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예/맥/한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보고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이전, 요하이서에는 맥, 요하이동에는 예 가 분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맥/예 는 범칭입니다.즉 맥/예 속에는 수많은 정치체가 포함되어 있을수 있습니다.
기원전3세기 이후, 중원세력의 확장으로 요하이서의 맥이 요하이동으로 이주합니다.
아시다싶이 맥은 소위 기마민족이며 예 는 물고기잡고 농사짓는 농경민족이죠.
고대사회에서 기마민족이 농경민족 지역으로 들어가면,수많은 사례에서 보시다 싶이,농경민족은 거의 통치 당하는 운명입니다.
맥이 요하이동으로 이주하면서,소위 예맥이라는 새로운 범칭이 탄생하였고,이 과정에서 맥이 예를 통치하는 수많은 새로운 정치체들이 탄생했을것입니다.

부여는 예 의 옛 땅이다 부여인들은 흘러들어왔다(즉 맥인) 라고 하였고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맥인)으로 일명 맥이다 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부여와 고구려는 맥이 예 지역으로의 이동의 1차 영향을 받아 탄생한 정치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한반도에도 이어집니다.
일례로 당나라 안사고는 북맥국에 대해 주석을 남기면서 뜬금없이 <삼한은 모두 맥의 종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걸 믿는다면,맥의 이동은 요하이동에서 압록강 정도까지가 아니라,한반도 남쪽까지 넓게 퍼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하이동에서 한반도 남쪽까지의 인류집단을 우리는 범칭을 사용하여 예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다만 각 지역마다 정치체가 등장하여 흔히 부여/고구려/옥저/동예/고조선/기타/삼한 이라고 할수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맥/예맥은 범칭의 개념이고, 삼한 혹은 한은 특정 지역의 정치체의 개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예 의 문화다 라고 하는건 아마 한반도 동해안에 한정했을수도 있습니다만,그러나 그것만이 예 의 문화가 아니지요.
저는 예맥이라는 범칭이 포함하는 지역은 모두 예/맥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구체적으로 지역을 구분하여 부여문화/고구려문화/.../삼한문화 라고 구분할수도 있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말씀하시는 가설의 방향은 이해하겠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맥=예=한=왜 이니, 대동아공영권이 완성됩니다. ^^

저도 예맥한이 인종적으로는 지역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보지만 세력으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를 고고학적 문화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로또님의 댓글

고구려사람들이 시조를 추모(주몽)라고 대대로 전하였으니 주몽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을것입니다.
저는 이부분이 전혀 문제될게 없다고 봅니다.

다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것은 신라본기입니다.
수당시대 중원 정사에 신라는 진한12개국의 하나로 출발하였고 그 원류가 고구려유민이라고 하였는데,이런 내용은 신라본기에 보이지 않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통합했다고 생각하는 신라의 입장에서,고구려출자라고 하는 현실을 받아드릴수가 없었을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관련 사료들을 모두 삭제하여 신라의 역사를 재편집하였겠지요.(이 과정에서 진한 기타 소국의 역사를 스스로에게 짬뽕했을수도...)
또 김씨가 고구려출자라는 의혹을 받을수있으니 이게 아마 흉노의 김씨 후예라고 하는 이유일수도 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고구려의 색갈을 지우는 것이지요.

로또님의 댓글의 댓글

북사/수서/통전/당회요 등에 나옵니다(물론 서로 ctrl+c 및 ctrl+v의 혐의가 있습니다만)

그중 북사를 예로 들면,
或稱魏將毋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有留者, 遂爲新羅, 亦曰斯盧.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아.. 북사의 기사는 저도 봤습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한번 다룬 적도 있고요.
https://suda-play.com/history_free/신라-삼국통일의-비결/

근데 제 생각에 그 기사에서 다루는 것은 3세기 미추이사금 세력의 등장에 관한 것이지 기원 전후의 신라 출자에 대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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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님의 댓글의 댓글

양서의 기록에 의하면 <진한은 원래 6국이다가 나중에 12국으로 됩니다.사로국은 12국의 하나.>
저의 의문은,왜 6국에서 12국이 되는가 하는 것이죠.6국이라는 토착세력이 자연적으로 12국으로 발전하였는지,아니면 외부세력이 들어가면서 12국으로 되었는지,만약 외부세력이 들어가서 12국이 되었다면,12국 중에 1,2개 정도는 외부세력일수 있습니다.

저는 사로국이 외부세력이라고 봅니다.그 이유는 말씀드렸다싶이 고구려유민을 원류로 하는 집단이 사로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북사/수서/통전 등)
사로국 집단이 진한 지역에 들어가 12국 중에 하나로 정착하였다고 저는 보고 있으며,그런면에서 볼때 시기적으로 김씨의 역사만 신라역사로 해야 하지요.

문제는 신라(사로?)가 진한 지역을 모두 먹어버립니다.그 지역의 챔피언이 되었지요.역사는 승자에 의해 씌여지기 때문에, 신라는 자신들의 역사를 더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특히 외부에서  왔다는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그러해야겠죠.아마 이때에 진한 기타 소국의 역사 일부를 시공간에 맞춰 사로국 역사에 짬뽕시켰으며 그 짬뽕된 부분이 박씨/석씨 가 아닐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정상적으로 성씨가 이렇게 바뀌면 왕조가 교체되어야 하는데,신라본기에는 왕조가 교체됐다는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선조의 역사를 짬뽕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1. 진한 6국이 12국이 된 시점이 언제일까요? <삼국지>에도 진한 12국이 나오는 걸 보면, 늦어도 3세기 초라고 보여집니다. 그에 비해 고-위 전쟁은 3세기 중반이니 시기적으로 늦습니다.

2. 김씨 세력이 합병한 진한 소국의 역사를 자기 역사의 앞에 붙였다는 가설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신라본기에 왕조가 교체되었다는 사실은 명확히 나타나고 있어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3. 경주 지역에 월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2세기 초인데, 이때 이미 신라는 경주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4. 진한 6국이 12국이 된 사실에 대해서 김상은 마한이라는 강력한 세력이 변진한을 지배할 때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나라를 쪼갰을 거라는 가설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김상설도 동의하기 어렵고요.

로또님의 댓글의 댓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삼국시대는 220년~280년이라고 하는거 같습니다.
관구검이 고구려를 크게 침략한것이 245년이면,아마 245년~280년 사이에 12국 중의 사로국이 탄생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댓글 depth 에 제한이 있네요... ㅜ)

<삼국지>에 진한 12국이 나오는데 삼국지가 보여주는 시대가 3세기 초라니까요. 진한 6국이 12국이 된게 1세기인지 2세기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3세기 중반은 아니라는거에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네. 핵심적인 질문을 하셨네요. ^^

https://suda-play.com/history_free/중국24사-한국-관련-기록/

제가 전에 정리한 자료인데, 사실 저도 통설에 기반해서 정리했기 때문에 각각의 근거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좀 찾아 볼께요.

로또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삼국지에 진한을 소개하면서 12개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후한서에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어느 특정 시기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진한이라는 전체적인 총괄 소개멘트라고 봅니다.
진한이 최종적으로 12국으로 되었기때문에,그렇게 소개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한의 위치를 설명할 때 대방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203년 이후이고, 고구려/옥저/예의 기사를 보면 246년까지의 기사입니다.

결국 <삼국지>는 203~246년 사이의 국경을 설명한 것인데, 정확히 뭘 근거로 3세기초로 특정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ㅜ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결국 사로국이 언제 등장했느냐가 관건인데, 문헌으로는 삼국지가 가장 오래됐으니 문헌으로는 해결이 안 될 듯 하고... (삼국사기는 제외하시겠죠?)

고고학적 증거를 봐야겠네요.

로또님의 댓글의 댓글

사실 그 부분이 바로 삼국지/한조의 함정입니다.
한이 대방의 남쪽에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한에는 세종류가 있다 라고 하면서 마한을 소개하지요.

여기에서 주의하지 않으면,삼국시대에 한이 대방군 남쪽에 있고,한의 서부는 마한이고,그 마한에는 54개국이 있고,진왕이 있고,마한인들은 말을 탈줄 모르고, 구뎅이를 파서 집으로 하고 살아가는,남녀구분도 없고....라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한에는 세종류가 있다>
->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한에는 세종류가 있[었]다>

옛날 이야기를 짬뽕시킨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 당시에 무슨 마한이 있었고,무슨 진왕이 있었고,어디에 그런게 있나요.준왕이 생전이실때에나 있을법한 이야기들이죠.

제가 이 댓글을 남긴 이유는, 삼국지의 내용은 시공간을 무시한 짬뽕의 냄새가 엄청 나기때문에, 그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자세한 부분은 저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기때문에,나중에 정리 되면 다시 댓글로 남기겠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로또님 의견처럼 <삼국지>가 여러 시대의 일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중원에서 멀수록 정보 입수가 느리고 문화적으로 낙후되었다는 중국인들의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진변한, 주호국(제주?)에 대해 자극적인 기사만 실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 진지한 역사 논의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할 수 있으니 너무 좋네요. ^^

잠수함님의 댓글

삼국 사기인데...
삼국이 사기친 이야기는 왜 없죠?


삼국 동맹 = 삼국이 동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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