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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흉노설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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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에 김씨 흉노설 관련 글이 올라온 김에 쟁점토론방에서 검토 해 보면 좋을 듯하여 별도로 발제글을 올립니다.

이후 김씨 흉노설은 여기서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 나무위키 흉노족 신라왕족설

https://namu.wiki/w/%ED%9D%89%EB%85%B8%EC%A1%B1%20%EC%8B%A0%EB%9D%BC%EC%99%95%EC%A1%B1%EC%84%A4

* 고고학적 반론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보입니다.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D%89%EB%85%B8#%ED%95%9C%EB%AF%BC%EC%A1%B1%EA%B3%BC%EC%9D%98_%EA%B4%80%EA%B3%84

* 김씨 흉노설의 기사와 반론 기사 링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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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흥무대왕님의 댓글

개인적으로 김씨 흉노설은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저는 김씨의 기원은 알영-김알지로 연결되는 신라의 기층 세력과 이에 편승한 북방 미추이사금 세력, 또 다른 독립적인 북방 나물이사금 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알영-김알지 계열은 닭을 토템으로 하는 세력으로 보이는 데, 동아시아에서 닭을 토템으로 하는 세력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치킨을 좋아하는 이유?). 미추이사금 세력은 부여계, 나물이사금 세력은 또 다른 부여계로 추정하고 있으나 아직은 가설을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제가 검색에 게을렀네요.
알영부인을 닭토템의 김씨족으로 보는 연구가 이미 있었네요.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5140

울티마툴레님의 댓글

나무위키의 내용은 두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1. 숭조를 하는데 하필이면 흉노족 출신을 한다니 좀 말이 안되죠. 왕건은 당숙종을 숭조화했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이 멸시하던 흉노족으로 숭조화한다는건 넌센스입니다. 아무리 투정후로 봉해졌다 할지라도 김일제는 흉노출신에다 투항한 자입니다. 숭조의.대상으로선 하자가 많죠.
게다가 문무대왕은 당과 싸운 사람입니다. 그가 하필이면 한나라에 투항한 자를 숭조한다는건 당시 상황과는 맥락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울티마툴레님의 댓글

2. 고고학적 유물을 검토한 나무위키내용은 핀트가 어긋난 것입니다. 김상교수의 주장은 김알지를 시조로 내세운 진골김씨세력이 왕권을 잡은 태종무열왕이후의 김씨가 바로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것이고 그에 대한 고고학적 근거는 문무대왕비와 대당고김씨부인묘지명이란 것입니다. 나무위키가 설명한 유물들은 흉노후예가 아닌 동호 내지는 오환족 출신들의 유물이라고 봅니다. 님은 부여계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윤내현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부여는 난하 상류지역동북쪽(동호 오환이 거주하던 지역)에 있다고 동쪽으로 옮긴 세력입니다. 당연히 비슷해보일수밖에 없습니다

울티마툴레님의 댓글

3. 김상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미추내물계 김씨가 성골이고 알지계 김씨가 진골이란 것입니다. 미추내물계가 고ㅡ위 전쟁시 남쪽으로 이민(탈영)했고 이들이 신라의 왕권을 잡았으며 그 고고학적 증거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한왕을 내세우지만 알지계 김씨가 태종무열왕 이전에 왕권을 잡은 적이 없습니다.
김상교수의 골품제에 대한 견해는 정말 참신합니다. 가설수준이기는 하나 골품제의 기원에 대한 참신한 시각이라고 평가합니다.

울티마툴레님의 댓글

4. 덧붙여 김상교수에.따르면 김유신계 김씨가 진골로 편입되며 왕권을 차지하고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찬하였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흥미로운 의견 잘 봤습니다.
요약 해 보면,

a. 알영부인-알지 vs. 미추-나물이사금은 각각 다른 세력이다. -> 이 부분은 저와 동일한 의견이군요.

b. 미추-나물이사금은 동일 계열이고, 성골이며, 고-위 전쟁 시 흘러 들어온 동호/오환 계열이다.  -> 이건 어느 책에 나오는건가요? 제가 본거랑은 좀 다르니 찾아봐야겠어요.

C.  알지계 김씨가 진골이고, 흉노의 후손이다 -> 이렇게 주장하시는거죠?

울티마툴레님의 댓글의 댓글

B. 김상님 책에 나와있습니다. 기억상 제2권일겁니다.
C. 제 주장이 아니라 김상교수등 일부사람들의 주장인데 김상님이 가장 잘 논리적으로 주장하시죠. 그걸 전 지지합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제가 백제-일본 관계에 집중하다보니, 신라쪽 견해에 대해서는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네요.
일단 김상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BC 57년 박씨집단 = 흉노에 쫓기는 오환족
65년 김알지 = 신나라에서 도망친 흉노족 (문무왕비문에서 언급)
262년 미추이사금 = 245년 고구려에 쫓긴 위군의 오환-선비계 군사
356년 나물이사금(모루한/마립간 계열) = 342년 전연군에서 이탈한 흉노-돌궐계 군사

제가 김상설을 많은 부분에서 지지하지만, 신라 지배층 관련해서는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1. 위 흐름을 보면 신라의 중요한 세력이 모두 북방민족인데, 왜 북방민족 유물이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는지?
2. 알영부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박혁거세거서간의 왕비족, 닭토템의 김씨족)
3. 4~6세기 고고학적인 북방유물들이 과연 선비계와 흉노계와 일치하는지?
4. 선비,오환은 동호계, 흉노는 흉노계, 부여는 예족 집단인데, 유물은 모두 북방민족으로 퉁쳐도 되는지...
5. 성골-진골 구분법은 인정한다고 해도, 성골이 과연 흉노계와 선비계를 아우를지? 서로 철천지 원수 아니었나? (거란과 여진이 서로 철천지 원수듯이)

물론 제가 동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1. 김씨가 여러 세력으로 이루어진 점
2. 미추-나물이사금이 외부 세력인 점 (정체는 아직 모호...)
3. 성골-진골 구분법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종족에 대한 판단만 제외한다면.

사료를 분석하여 가설을 세우더라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그 가설이 어느 정도 인정 받을 수 있을텐데 그런 부분에서 아직은 미흡하다고 보이며 신라의 유물들이 어느 세력이었는가가 먼저 명확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막연히 북방민족...은 판단을 내리기엔 부족해 보이네요.

이상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별도의 발제글에 대해서는 별도로 답글 달겠습니다 ~

울티마툴레님의 댓글의 댓글

흥무대왕님 질문에 대해 답변이.이뤄진다면 신라왕권변동과 지배층구조가 절로 밝혀지겠네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그럴거 같아요. 하지만 고고학적 성과가 필요한 부분이니 정확한 답이 나오려면 최소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 봅니다.

그리고 사실 전 기층 민중의 삶에 더 관심이 있는데, 매번 지배층이 누구냐만 따지고 있으니 자괴감이 드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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