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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 무협의 4대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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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협은 60~70년대의 번역 무협시대, 80년대의 창작 무협시대, 90년대의 신 무협시대, 2000년대의 통신 무협시대로 간략하게 구분할 수 있다. 지금부터 2회에 걸쳐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1961년 경향신문에 ‘정협지(情俠誌)’라는 제목의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대만 작가 울지문(尉遲文)의 ‘검해고홍(劍海孤鴻)’이라는 작품을 고 김광주(金光洲 : 1910-1973)가 번안해서 연재한 것이었다. 고 김광주는 칼의 노래로 유명한 작가 김훈의 부친으로 당시 경향신문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무협소설을 이 땅에 소개한 것이다.

번안이라고 하는 것은 원작 소설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손길을 가해 이야기를 늘리고, 혹은 바꾸면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원작은 한 권짜리에 불과했는데 번안하면서 여섯 권 정도의 분량이 되었다니 재창작이라고도 할만하다.

고 김광주는 이것만이 아니라 1966년에는 동아일보에 심기운(沈綺雲)의 ‘천궐비(天闕碑)’를 ‘비호(飛虎)’로 번안해서 연재했고, 중앙일보에 반하루주의 ‘독보무림’을 ‘하늘도 놀라고 땅도 흔들리고’로 번안해서 연재했다. 한국에서 무협의 역사는 고 김광주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1960년대 후반에는 대만 작가 와룡생의 ‘옥차맹’이 ‘군협지(群俠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작은 출판사에 불과했던 동아출판사가 ‘군협지’ 덕분에 거대 출판사가 되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와룡생의 무협소설들이 대거 번역되었다. 나중에는 다른 중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와룡생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었고, 한편 이렇게 출간된 무협소설들이 대본소용으로 팔리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최초의 대본소용 무협소설은 대만작가 상관정(上官鼎)의 ‘침사곡(浸沙谷)’으로 1972년의 일이었다. 대본소 유통은 제작비가 덜 들고 안정된 수익이 보장되며 다수의 책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대량의 무협소설이 번역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무협소설들은 저자와 내용을 확신할 수 없고, 상당수 번안이었으며, 때로는 편저인 경우도 많았다.편저라는 것은 이런저런 작품들에서 내용을 발췌해 짜깁기를 한 것을 말한다. 원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고, 이야기의 구조며 일관성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거기에 성의 없는 번역과 번역할만한 우수한 작품이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독자들이 외면하는 상황이 왔다. 이때부터 창작 무협소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9년 한국작가 김대식(金大植)이 을제상인(乙齊上人)이라는 필명으로 쓴 ‘팔만사천검법(八萬四千劍法)’은 침체된 무협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번역 중국 무협소설보다 창작 무협소설이 더 재미있고, 잘 팔린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이때부터 창작 무협소설이 활발히 나오기 시작했는데,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실제 지은이는 번역자로 표기되고 작자는 와룡생이나 진청운 같은 중국작가 이름을 쓰곤 했다.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작가는 이연재였다. 그는 왕명상(王明常)이라는 필명도 병행해 사용하면서 백여 편에 이르는 히트작을 냈지만, 그중에는 번역이나 번안 등이 포함되어 있어 창작 무협작가로서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의 대표작은 ‘신풍금룡’과 ‘독목수라’ 2부작, 그리고 ‘천무영웅전’이다.

번역필명 시대를 지나서 와룡생 등의 이름을 떼고 중국풍이긴 하지만 한국 작가의 필명으로 활동하는 시대가 왔다. 이때를 기준으로 번역 무협시대와 창작 무협시대를 나눈다.

그 선두주자는 81년 데뷔한 금강(金剛)과 사마달(司馬達), 그리고 앞의 두 사람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한 야설록(夜雪綠)과 고 서효원(徐孝源 : 1959-1992)이었다. 그들은 80년대 무협의 사대작가로 불리며 10여 년간 한국 무협계를 지배해 왔다.금강은 1981년 ‘금검경혼’으로 데뷔한 이래 ‘뇌정경혼’, ‘영웅천하’, ‘절대지존’ 등의 작품을 냈고, 1987년 한국적 무협소설을 표방한 ‘발해(渤海)의 혼(魂)’, 1999년 ‘위대한 후예’를 쓰기도 해서 이 방면의 선구자로 인정된다.

그는 요즘도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무협게임 ‘영웅 온라인’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사마달은 1981년 ‘혈천유성’으로 데뷔하고 ‘절대무존’으로 이름을 굳혔다. 그는 글보다는 스토리에 재능이 있어서 데뷔작 외에는 전부 공저를 하는 특이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그의 스토리를 이해하고 표현할 줄 아는 가필(기본 스토리를 받아서 글로 완성시키는 것) 작가로 누구를 만나느냐에 그 수준과 작품성이 좌우되었다.

그런 가필 작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그 자신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한 검궁인이다. 사마달은 검궁인과 공저로 ‘월락검극천미명’ 등의 작품을, 일주향과 공저로 ‘십대천왕’ 등을, 철자생과 공저해서 ‘구천십지제일신마’ 등의 작품을 냈다.

그후 한동안 그의 이름을 빌린 대명(실제로 그가 쓰지 않았으나 그의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 무협만 나오다 95년에 다시 유청림이라는 공저자와 함께 무협의 틀을 빈 정치 풍자소설을 표방한 ‘대도무문’을 냈고, 검궁인과의 공저작인 ‘월락검극천미명’을 ‘달은 칼 끝에 지고’로 개명하여 스포츠 서울에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도무문’을 공저한 작가 유청림과 함께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미후왕’이라는 소설을 여러 매체를 통해 연재하고 있다.야설록은 금강과 사마달보다 1년 늦은 1982년, ‘강호묵검혈풍영’으로 데뷔했다. 80년대에 같이 활동하던 작가들과는 달리 비장미를 중시하고 캐릭터 하나하나를 강조하는 작풍을 가져 주목을 받았다.

무협소설로 ‘표향옥상’, ‘녹수옥풍향’ 등의 작품을 냈고, 후에 만화 스토리 작가로 전업하여 스토리작가협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만화가 이현세와 손을 잡고 만든 ‘남벌’, ‘아마게돈’,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등이 유명하다. 한편으로는 현대소설도 쓰고 출판사를 경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최근에는 직접 게임제작에 뛰어들어 무협 온라인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고 서효원은 대학 시절 위암으로 시한부 생명 판정을 받고 이후 12년간 백 수십 질, 1000여 권의 무협소설을 쓴 뒤 33세로 요절했다.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유고집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에 실려 있다. 짧고 건조한 문체로 빠른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그의 독특한 작풍과 굴곡이 없이 일정한 작품 수준에 반한 팬이 많다.

백 수십 편에 달하는 그의 작품 중 ‘대자객교’와 ‘실명대협’이 가장 유명하다.

금강, 사마달, 야설록, 서효원, 이들 네 작가가 활동하던 80년대 초중반이야말로 창작 무협의 전성기였다 할 것이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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