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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울보였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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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과 독일 제국의 총리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

 

군복을 입은 초상화와 철혈 재상이라는 별명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는 성격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감성적이고 울보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다 안되자 울면서 자살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구라 같지만 그는 심지어 왕 앞에서도 울면서 자살 소동을 벌인 적 있다.

 

1866년,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국왕 빌헬름 1세와 다른 대신들은 한바탕 오스트리아를 삥 뜯을 생각에 들떴다.

 

 


 

빌헬름 1세 : 우리가 이겼는데 쟤네 땅도 좀 뜯고 하자

 

 


 

비스마르크 : 안됩니다. (담에 프랑스랑 한판 붙어야 하는데 뒤통수 맞을 일 있냐)

 

 


 

빌헬름 1세 : 그럼 쟤네 수도에서 우리 승전 퍼레이드 하자

 

 

 


비스마르크 : 안됩니다 (독일계 큰 형님인 오스트리아한테 개망신 주면 다른 독일계 제후국들이 우릴 어떻게 보겠냐)

 

 

 


빌헬름 1세 : 쟤네가 먼저 선전포고 했는데 이 정도도 안돼?

 

 


 

비스마르크 : 안돼! 안돼! 안돼! 으헝헝 계속 그러시면 저 뛰어내려 죽어버릴겁니다!

 

 


 

왕세자 프리드리히 : (...) 아바마마 총리가 저렇게까지 반대하는데 들어주시죠...

 

 


 

빌헬름 1세 : 씨발 니 맘대로 해라

 

실제로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 밑에서 왕 노릇 해먹기 힘들다" 라고 말한 적 있다.

 

 

 


 

아니 근데 결국에는 비스마르크 덕에 프랑스도 깨부수고 독일 황제 됐으니까 좋은거 아님?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빌헬름 1세 : 난 황제 되겠다고 한 적 없어...

 

 

실제로 빌헬름 1세는 프로이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더 소중히 여겼으며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도 비스마르크가 빌헬름 1세의 사위인

 

바덴 대공 프리드리히를 앞세워 설득하자 겨우 수락했다.

 

대신 오스트리아에서 못한 수도 행진을 프랑스 파리에서 강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헬름 1세는 죽는 그날까지 공적으로 비스마르크를 신임하고 팍팍 밀어줬다.

 

외교관 출신인만큼 비스마르크의 능력은 외교전에서 크게 빛났는데

 

그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비위를 살살 맞춰주면서 프랑스를 유럽에서 고립시켜

 

후발주자인 독일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는 비스마르크 개인 역량에 크게 의존한 것으로 그가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자

 

독일은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종국에는 양면전쟁에 몰려 1차대전 패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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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명
    날으는 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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