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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같은 국호를 쓴 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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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月中高麗太王祖王公□新羅寐錦世世爲願如兄如弟

5월, 고려태왕(高麗太王)의 조왕공(祖王公)과... 신라 매금(寐錦)은

세세(世世)토록 형제같이 지내기를 원하여 (중략)

 

『충주 중원 고구려비 석문』























奏曰 "高麗國王大欽茂言..."

아뢰 말하기를 "고려국왕 대흠무(발해 3대 문왕)가 말합니다..."

 

『속일본기(續日本紀)』 폐위 준닌일왕(廢帝 淳仁天皇)

덴표호지(天平寶字) 3년(759) 봄 정월

 

『속일본기(續日本紀)』 는 일본만의 자주의식을 강조하고자 집필된 정사서입니다.

실제로 발해의 국서가 저런 성격은 아니겠지만, 공식 외교문서에 '고려국왕' 이라며

발해의 국왕이 스스로를 표명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戊寅)元年 夏六月 丙辰 卽位于布政殿, 國號高麗, 改元天授.

〈무인〉원년(918) 여름 6월 병진, 〈태조[太祖 - 왕건(王建)]가〉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하여

국호(國號)를 고려(高麗)라 하고, 연호(年號)를 고쳐 천수(天授)라 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1권, 태조 원년(918) 6월 첫기사

 

 

 

위 기록들을 통해 볼 수 있듯 당시의 세 나라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국호는 '고려(高麗)' 입니다.

다만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흔히 알려진 '고구려, 발해, 고려' 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이렇듯 '고려' 라는 국호의 연속적인 사용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이른바 '고구려' 이래의 다른 왕조들 모두

'고구려의 계승인식을 지녀왔다.' 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려의 후신인 조선 역시 한국사의 전반적 인식을 형성하기 시작한

고조선을 쭉 이어왔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국호를 '조선' 이라 명명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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