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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지 대전투 - 겨울 지옥 (스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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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바스통 결전 (101 공수부대의 전설)

 

벌지 전투의 클라이맥스

 

어쨌든 12월 17일까지 독일군이 전선을 길게 밀어 붙힌 모습이 미국인들이 봤을 때는 주머니처럼 보인다고 


"벌지"라는 이름을 붙히게 됩니다. 


선봉에 나선 나치 기갑부대들의 거침없는 공격과 최전방에 배치되었던 신병들 중심의 미국 보병 사단들이 무력하게 무너진 결과 입니다


만 겉잡을 수 없는 전선의 붕괴는 현지 사령관 브래들리 장군이 자력으로는 어떻게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2차 대전 기록 사진 중에서 꽤 알려진 벌지 전투 중에 독일군 기관총 사수의 사진입니다. 


2차 대전 TV다큐멘터리에 곧잘 나오는 사진입니다.)





 

브래들리가 당황하고 있을 때 그의 상관인 아이젠하워는 이미 현지 사령관보다 더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D-데이에 가장 뛰어난 전공을 세운 101공수사단("밴드 오브 브러더스"의 주인공 이지 중대가 소속된 바로 그 부대)과 


82공수사단을 아르덴 지역으로 급파합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101공수는 벌지 전투 최대의 격전지인 바스통으로 가게 되었고 82 공수 역시 매우 중요한 방어 거점인 


생 비트(St. Vith) 방면으로 투입됩니다. 


공세 첫날 신병 위주로 구성된 2개 사단을 손쉽게 "학살"했던 독일군에게는 드디어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게 되는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급히 투입된 탓에 이 두 개 공수 부대 병사들은 제대로 동계 장비를 지급 받지도 못하고 엄청나게 추운 아르덴 숲 속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그들은 공수 부대였지만 악천후 상황에서 낙하산 강하는 불가능하였으므로 트럭에 나뉘어 타고 무려 200km의 거리를 육로로 이동하여 


생 비트와 바스통에 도착하게 됩니다.

 



 



(1944년 12월 바스통 전투 당시에 지도. 도대체 독일과 연합군 모두 왜 바스통을 빼앗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일까요? 


지도를 보면 그 답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스통은 위에 볼 수 있듯이 사방 팔방에 도로들이 바스통을 모두 통과하고 있습니다. 


아르덴 지역의 울참한 삼림에서 독일군이 진격하려면 기갑부대와 대규모 보병 병력들은 이미 포장된 도로를 통해 진격해야 


많은 숫자가 신속히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탓에 모든 포장 도로가 통과하는 바스통은 반드시 독일군이 손에 넣어야 할 중요한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던 것입니다. 


반대로 이곳을 연합군이 성공적으로 막아낸다면 독일군의 대규모 병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이 묶여버리는 것입니다.)




 

한편 브래들리 장군의 너무나 늦은 상황 파악과 안일한 대처에 대해서 그의 절친이었지만 동시에 직속 상관이었던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은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그의 친구인 브래들리가 패튼이나 몽고메리가 보여줬던 리더쉽과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애시 당초 안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소한 브래들리 장군은 패튼이나 몽고메리가 갖지 않은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젠하워 밑에서 그동안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젠하워에 대한 절대 복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벌지 전투와 같이 아이젠하워 자신이 미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브래들리와 같은 지휘관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비록 말썽을 피울 때도 있지만 전투 만은 확실하게 해내는 패튼과 같은 지휘관이 이럴 때는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정작 브래들리 장군의 본부 위치도 격전이 일어나고 있는 생 비트와 바스통 보다 한참 남쪽에 위치한 룩셈부르그였습니다. 


결국 브래들리는 전투 현장에 있는 부하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는 지휘관이었던 것입니다.


브래들리에 대한 실망과 함께 이런 그의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서 아이젠하워는 전선 북쪽에서 방어하는 병력은 


근처에 있던 몽고메리 장군에게 넘겼고, 남쪽 바스통에 101공수부대의 구출은 패튼 장군에게 임무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브래들리 장군 휘하의 병사들이 독일군에게 궤멸 당하자 


남쪽에 주둔하고 있던 패튼 장군은 드디어 브래들리의 코를 납짝하게 해주고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이젠하워가 "주머니" 모양으로 형성된 전선의 기이한 형상을 상하에서 협공을 해오는 경우에 


속수무책으로 보급선이 끊기고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라 이미 예측하고 


그의 제3군(지도 상에"THIRD ARMY") 병력을 북쪽으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를 하도록 명령합니다.

 




 



(조지 패튼 장군(1885년~1945년), 그는 인간적으로는 정말 결함이 많은 문제아였습니다. 


오만하고, 안하무인의 그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투에서 만은 정말 뛰어난 지휘관 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독일군이 가장 두려워한 연합군 야전 지휘관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패튼 장군! 


1943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아프리카 군단의 항복을 받아낸 후에 지중해를 건너 시실리 섬 상륙까지 눈분신 전공을 휘날리던 그는 


야전 병원 위문 방문 중에 전쟁의 트라우마로 울고 있는 부상병의 뺨을 때리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저질러서 본국 언론에 두둘겨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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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명
    날으는 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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