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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벨 보다가 반에서 공개망신 당하고 자살했던 중학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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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새끼들이 그렇지... 진정한 스승님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헬피 엔딩 답게 고작 집유로 끝나고 말았으니 자살한 학생의 혼도 전혀 위로 받지 못했겠구나





법은 민심과 함께해야 하는데 민심과 떨어진 법은 존재의 의미가 있나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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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명
    날으는 황웅
댓글 3

미우님의 댓글

저는 이해가 안가네요.
학생이 투신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수업 시간에 다른 짓 한 것에 저 정도 꾸지람도 못하는 것인지
수업 끝나고 따로 불러 다음부턴 만화책 보지 말라고 해야 맞는지
내용만으론 추가적인 뭔가 비인격적인 언사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교탁 앞에서의 얼차려가 학대가 되는 것 같은데 내용만으론 얼마나 가혹한 얼차려인지 손들고 꿇어앉아 있었는지 머리를 박고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시대가 다름에 그 정도를 감안하더라도 저 정도가 뛰어 내일 일이면 지난 시대엔 한 반에 80%는 뛰어내렸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스로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면 잠깐의 불쾌감 보다 상대의 무지가 더 불행해 보여야 맞을 것 같은데 무엇이 저리 나약하게 만든 것인지
옛날 우리 시대의 비인격적 폭력적 선생들이 꼴보기 싫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체의 체벌도 저 정도의 꾸지람도 못하는 교육자면 교육자가 왜 필요한지
지식 전달만이 필요한 것이면 그냥 집에서 비디오 강의 듣는 게 더 나은 거 아닐지, 아니 단체 생활 체험이 필요하더라도 그냥 교실에서 비디오 강의 보다 집에 가는 게 더 나은 거 아닌지
저런 사건의 배경은 학교나 교육 환경 만이 아닌 사회나 가정의 문제가 더 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일런지

황웅님의 댓글의 댓글

개개인의 일상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한창 예민할 시기에
반 학생들의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것은 분명 잘했다 볼 수 없죠.
제가 자랄 땐 아무 이유 없이 오만 가지 말도 안되는 구타와 폭언 그리고 인격적으로 모멸감이 드는 행동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정당화 될 순 없죠.
아마 처라리 한 대 맞는 체벌 선에서 끝났다면 별거 아닌 것으로 지나갈 수는 있었겠지만
안그래도 왕따로 트라우마를 격었던 소년에게는 저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없었을 겁니다.
본문에도 나왔지만 교실로 돌아가는데 같은 반 급우들이 오는 것을 보고 다시 올라가서 목숨을 끊은 것을 보면 얼마나
앞날이 힘들지 알겠기에 생을 포기하지 않았을 까요?
학생이 잘 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죽음으로 몰아갈 만큼의 잘못은 아니지요.
교사라면 아이들의 이야기도 한번쯤은 들어 줄 필요도 있었을 것인데
교사 스스로의 잣대에 학생을 가둬두고 재단을 한 것은 아니였을까요?
우리가 자랄 때는 그저 웃음거리로 잠시 웃고 쪽팔리고 지나갔겠지만
요즘 애들은 왕따라는 사회적인 문제가 너무도 악습이라.....
교사라는 직업을 가져서는 안될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의 교사는 그저 지식을 파는 노동자로 스스로를 가치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른 문제도 아니고 사람의 생명을 포기했던 사건이니 이슈화 되었겠지요.
아마도 기사에 자세한 사정이 적힌 거 같지는 않네요.

미우님의 댓글의 댓글

네... 다만 제가 주목하는 것은 저 정도에 목숨을 끊어야 하는 심리에 대한 부분입니다.
교사가 잘 했다고 볼 부분은 없지만 교사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그런 심리 작용의 요인이 교육 뿐 아니라 사회와 가정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보여서요.
학생들 무리 사이에서도 늘 흔히 일진이라 부르는 애들은 있었어도
근래 우리가 봐오듯 그렇게 가혹하게 특정 대상을 못살게 구는 경우가 빈번한지나
수업시간의 지적만으로 그런 대상에 오르는 게 걱정인데도 지적을 받을만한 행동은 하면서 또 멘탈은 저 정도인 게
삶의 가치나 사회에서의 역할을 어떻게 인지하고 알아왔는지 성장하면서 주위에서 어떤 걸 느끼며 살아왔는지
주변인들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참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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